[현장, 그곳&] 가성비 좋은 ‘배관용 보온재’ 화재 때 불씨 키운다

15일 오전 수원시 장안구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배관에 가연성이 높은 발포 폴리에틸렌으로 작업이 돼 있어 화재가 우려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건물 배관에 주로 쓰이는 건축설비용 보온재가 화재 때마다 불씨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가성비가 좋다는 이유로 계속 사용되고 있어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17일 용인시 수지구의 한 복합건축물. 지하 1층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천장에 줄줄이 늘어선 배관들이 빨간색의 포장재로 감싸져 있었다. 이 소재는 저렴한 가격 대비 높은 보온성으로 건축설비용 배관에 주로 쓰이는 발포 폴리에틸렌으로 확인됐는데, 가연성이 높아 화재 발생 시 불길이 더욱 크게 번지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2017년 12월,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에도 배관을 덮은 보온재 탓에 불길이 더욱 크게 확산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건물 역시 연간 이용객이 30만명에 달하는 스포츠센터가 입주해 있고, 지하주차장을 통해 주민센터 등 시설과 연결돼 있어 불이 날 경우 대형 인명피해가 우려됐다.

이날 수원시 장안구의 한 아파트 단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845세대가 거주하는 이곳 단지 지하주차장에선 더 많은 배관들이 천장에 자리를 잡았다. 지하 1층 천장 한 켠에는 12개의 배관이 달려 있었고 모두 형형색색의 보온재로 둘러쌓인 상태였다. 이 보온재 역시 가연성이 높은 발포 폴리에틸렌으로 확인됐다.

앞서 불과 2개월 전인 지난 8월 충남 천안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 때도 이런 보온재가 불길을 더 키운 요인으로 조사된 바 있다. 당시 세차 차량 폭발로 시작된 불은 배관 보온재를 타고 번졌고, 차량 666대를 태웠다. 천장으로 타고 불이 퍼진 탓에 스프링클러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관련 제도의 규제를 받는 ‘건축용 단열재’와 달리 이 같은 ‘건축설비용 보온재’는 내부 마감재로 인정되지 않아 별도의 제한 기준에서 벗어난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발포 폴리에틸렌으로 배관을 감싼 경우 불이 나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해도 살수 반경에 들지 않아 의미가 없다”며 “또 배관은 천장이나 기둥에 직접 부착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국토교통부에서는 이를 ‘내부 마감재료가 아니다’라고 유권 해석을 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안전 사각지대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발포 폴리에틸렌과 같은 보온재는 작은 불꽃인 소화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난연성을 갖고 있지만, 큰 불길에서는 무용지물”이라며 “이런 재질이 위험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가성비를 보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화재 발생 시 발포 폴리에틸렌 등의 소재가 불을 키울 우려가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현재는 벽체를 통과해 다른 공간으로 이어질 경우에는 난연 재료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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