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 끊임없이 새롭게 시도하는 작가 구상희

“변화 두렵지 않아요, 죽을 때까지 도전해야죠”

2008년 다시 시작한 유화작업이 어릴 적 꿈이던 화가의 길로 인도할 줄은 몰랐다. 결혼 전 디자이너로 일하다 변호사인 남편의 내조와 육아를 위해 공백의 시간을 잠시 가진 뒤였다. 자신을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에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만두고 싶을 때쯤 또 뭘 비틀어보지? 하는 고민이 온몸을 휘감는다”는 작가 구상희(47)는 천상 예술가였다. 지난달 말 용인 수지구에 있는 구상희 작가 작업실에서 물감이 가득 묻은 작업복을 입은 그를 만났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석사과정에 있는 그는 회화의 틀을 넘어 변화와 도전을 하는 화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7월 양평군립미술관에서 열린 <FREEDOM 2019 ‘어제와 다른 내일’ 전>을 마치고 이달 28일 후쿠오카 아시안 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는 구 작가는 “요즘 잠시 쉬는 시간”이라면서도 작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구 작가의 시선은 평면주의적 풍경화에서 왜곡과 뒤틀림, 모서리와 주변으로 축약된다. <사유의 공간> 시리즈는 고흐의 작품을 차용해 현대의 문고리, 방 등 일상 공간 속에서 재해석해 옮겨놓는 방식을 새로운 프레임으로 만들었다. 또 문 손잡이와 같은 볼록의 반사체, 도로반사경 등 소재를 활용해 파놉티콘과 시놉티콘의 세계와 뒤틀리고 왜곡된 세계를 끄집어내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SCOPE 전시에서 작품이 구석에 걸린 것을 보고 그는 또 한 번 변화를 결심한다. 비주류의 프레임을 자신이 직접 차용하기로 한 것.

“작품이 전혀 사람들 눈에 띄지 못하는 곳에 걸린 걸 보니 소외감이 심하게 들었어요. 그만둬야 하나 며칠을 끙끙 앓는데, 나도 모르게 ‘또 어떻게 변화를 줄까?’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내가 메인 작가가 아니면 당당하게 모서리에, 주변에 걸릴 작품을 만들자. 모두 중심을 향해 주변을 배제하지만, 그곳이 중앙일 수 있다. 그래, 모서리, 주변을 주목하자!’”

몸 털고 일어나자마자 박스를 맞추고 작업을 했다. 그리곤 보름 만에 SNS에 작품을 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Trace of Sans>. 캔버스, 크리스털 레진 위에 작업하는 이 작품은 벽 모서리, 구석, 벽 한쪽 귀퉁이에 설치하도록 제작했다. 텍스트와 이미지들의 유채색이 정제돼 아래로 흘러내린다. 판매도 되고 해외 갤러리에서 전시를 조율하는 등 반응도 좋다. 올해 전시 일정이 벌써 빼곡한 그의 희망은 좋은 작가들과 협업하는 환경이 마련되는 거다. “좋은 작가가 나오려면 좋은 비평가들이 많아야 해요. 한국에서 좋은 작가들이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서 같이 작업하고 싶습니다.” 머무르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작가가 되겠다는 다짐도 했다. “남들은 자신만의 확고한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정체성을 정립 안 하면 뭐 어때요? 죽을 때까지 새로운 걸 찾아서 시도하고 표현하는 게 작가잖아요.” 쑥스러운 듯 진심이 담긴 그의 말이 미소처럼 반짝였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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