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멋대로 바꾼 지역 명칭 도내 1만 1천곳
3ㆍ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했지만 정부와 행정기관은 문제 의식없이 일본강점기에 생겨난 지명과 관행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제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지명의 다수가 현재 교육기관 및 지자체 명칭으로 버젓이 쓰이고 있음에도 우리 고유 지명 변경에 대한 노력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25일 한국땅이름학회 등에 따르면 일본강점기 당시 행정구역 중 면은 1천338개에서 2천521개로 늘어난 반면 군은 377개에서 220개로, 리는 6만 2천532개에서 2만 8천366개로 줄어 들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앞세워 조선의 땅을 조사하고 행정구역 폐합 정리가 필요하다는 구실로, ‘조선토지조사사업’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시 일본은 경기지역에 1만 1천여 개의 고유지명을 없애고,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지명을 대대적으로 개명했다.
신구대조조선전도 부군면리동 명칭인감에 따르면 경기도는 히가키 나오스케 조선총독부 경기도 장관이 1914년 4월1일 군면 통폐합에 나섰다. 이때 통폐합으로 ‘양지현’이 ‘용인군 양지면’과 ‘안성군’으로 나뉘어 현재의 용인시와 안성시로 굳어졌다. 아울러 현재의 분당 부지도 장터(盆店ㆍ분점)와 당모루(堂隅里ㆍ당우리)를 억지로 합쳐 앞글자만 따 분당이라는 이름으로 통폐합했다. 또 인천의 송도도 러일전쟁 당시 침몰한 일본의 마쓰시마(松島ㆍ송도)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해 현재도 송도신도시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지명 외에도 관행 측면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는 ‘황국신민의 서사’를, ‘국민교육헌장’은 ‘교육칙어’를 모방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우리 정서와 실정에 맞는 국민 헌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인감제도도 1914년 시행된 제도로, 인감으로 신고하지 않을 경우 토지를 국유화하는 토지수탈 작업과 전쟁동원 물자 조달을 쉽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지난 1990년대 초부터 일본과 대만은 인감제도가 등록제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사회 곳곳에서 인감이 필요한 실정으로 일제 잔재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은 “아직도 일본인들이 멋대로 지은 명칭을 그대로 두거나 이를 본 따 공공기관명을 짓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은 겨레의 수치”라며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는 이때 우리 지명에 대한 고찰과 함께 변경에 대한 노력 등 최소한의 인식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오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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