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 이재복 작가(수원대 교수)

‘슬픈 역사’ 20년간 연작 수많은 희생 잊어선 안돼

지난달 22일 최초의 ‘문민정부’를 세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가 남긴 업적과 어록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중 가장 많이 회자된 말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였다. 그 시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으로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이재복(수원대 교수) 작가의 작품명이기도 하다. 작가는 20년 동안 연작 <슬픈 역사>를 통해 ‘꽃상여가 남긴 서글픈 곡조(1993)’ ‘고귀한 죽음(1995)’ ‘영웅(2008)’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2004)’ 등 우리나라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작품을 선보여 왔다.

 

‘역사의 대서사시’라고 표현 되는 그의 작품은 식민지 시절에서 해방, 한국전쟁, 군사정권, 민주화 운동, 분단의 모습까지 우리 역사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라온다.

 

그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슬픈 역사를 작품 속에 담고자 했다”고 연작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강한 엄숙함이 느껴진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민족의 서글픔과 군사정권 시절의 아픔,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분단의 서러움이 담겨 있다.

그는 “수 천 년 동안 수없이 많았던 전쟁들, 그 속에 죽어간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라며 “작업을 통해 어쩌면 잊혀 질지 모를, 또는 잊혀져간 그들을 위한 추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의 소재는 지극히 한국적이다. 키, 부채, 연, 빨래판, 새끼줄, 담배가루, 고서 등 우리 것을 사용한다. 하지만 표현 방식은 현대적 조형 기법을 차용한다. 한국의 것에 서구적 조형기법을 사용해 이재복 만의 작품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만의 차별화 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찾고자 했다. 한국성을 보여주는, 자주성을 강조하는 소재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여기에 현대의 옷을 입혔다”고 말했다.

특히 고서를 사용한 점이 뜻깊다.

 

그는 “일제가 35년 동안 우리 문화를 단절 시켰다. 그때 많은 고서들이 버려졌다”며 “그 고서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나와 고서를 작성했던 사람들과의 공동 합작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곧 끊어진 역사를 다시 잇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요즘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주로 사용하던 화선지를 과감히 파괴하고, 바탕에 알루미늄호일을 깔아 현대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나아가 이태리의 디자이너가 고안한 스테인리스 스틸 의자 위에 그의 작품을 접목시키기도 한다.

 

그는 “한국이 지나치게 서구화 돼 있는 시점에서, 너무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았나라는 딜레마가 있었다”며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완전히 서구적인 것을 접목하거나, 디자인적인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송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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