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연, 먹, 수채와 같은 물성과 반복적인 행위 활용 선 긋고, 문지르고, 덧댄 수행적 노동의 흔적…‘몰입의 기록’
사람이 가장 쾌적함을 느끼는 온도는 섭씨 18도에서 24도 사이라고 한다. 이 범위 안에서 섭씨 19도는 서늘함과 집중력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품는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온도는 신체의 이완과 의식의 각성이 동시에 유지되는 환경으로 외부의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내면의 흐름에 깊이 침잠할 수 있는 몰입의 상태를 가능하게 한다.
예술공간 아름과 실험공간 UZ(수원시 팔달구 정조로)에서 진행 중인 최세경 작가 초대전 ‘玄 섭씨 19°C’는 물리적 기온이 아니라, 무아의 경지, 정신의 안정, 몰입과 수행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최 작가는 드로잉에 기반하면서도 각종 설치 작업을 이어오며 개체와 개체 사이 상호작용을 연구해왔다. 인간의 외형을 통해 외부와 관계 맺는 상황을 작업으로 풀어내기도 했던 그는 존재의 내부에 집중해 내면과 심연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섭씨 19°C는 작가가 추구하는 작업의 정서적 기반이자, 감각과 정신이 가장 투명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전시의 또 다른 키워드인 ‘현(玄)’은 어둠을 뜻하는 검(黑)과는 다른 층위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모든 색이 섞여 검어진 색, 밤하늘의 심연 같은 빛, 그리고 알 수 없으나 존재하는 것의 깊이를 가리킨다. 현은 ‘그윽하고 아득한(幽遠)’ 차원의 감각이며, 시각을 넘어서 마음으로 느껴야 할 대상이다.
내면과 심연을 들여다보며 ‘현’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최 작가는 흑연, 먹, 수채와 같은 물성과 반복적인 행위를 활용했다. 작품은 멀리서 보면 단순한 추상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마주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켜켜이 쌓인 흑연의 궤적, 일관되면서도 꿈틀대는 붓의 획이 만들어낸 흐름, 가느다란 볼펜으로 중첩해 놓은 한 획 한 획. 선을 긋고, 문지르고, 덧대는 수행적 노동의 흔적은 단순한 기법을 넘어선 몰입의 기록이다.
작품은 말하지 않지만, 침묵 속에서 스며들듯 관람자의 감각을 끌어당긴다.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어둠과 선의 결, 서늘한 기운과 반복되는 행위의 리듬,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작은 우연들과 만나게 된다. 이 모든 요소는 섭씨 19°C의 고요한 온도처럼, 우리 안의 무언가를 움직이고, 정화하며, 치유한다.
전시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그러한 온도와 색, 감각과 행위의 교차점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수행”이라며 “그 수행은 관람객의 시선과 마음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단순한 온도가 아닌,몰입과 무아, 치유와 수행의 상징적이며 스스로의 안으로 현을 찾아가는 여정을 제시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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