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에 대한 2조5천억원 규모의 주식 무상소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를 ‘희생’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법률상 요구되는 절차이자, 사실상 가치가 거의 사라진 주식을 정리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MBK는 지난 13일 입장문을 통해 “홈플러스는 인가 전 M&A를 추진 중이며, 이에 따라 MBK가 보유한 홈플러스 보통주는 전액 무상소각된다”며 “경영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새로운 인수자의 인수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무상소각 조치를 자발적인 책임 이행이라기보다는 회생절차상 당연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205조 4항은 회생절차 개시 원인이 이사나 지배인의 중대한 책임으로 발생한 경우, 특수관계에 있는 주주의 주식 중 3분의 2 이상을 소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도 무상소각이 기존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배제하고, 새 인수자가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더욱이 홈플러스의 기업가치가 크게 하락한 상황에서 주식을 소각하는 조치를 실질적인 책임 이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회생법원에 제출된 삼일회계법인 조사보고서를 보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는 약 3조6천816억원으로, 계속기업가치인 2조5천59억원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영업을 지속하는 것보다 청산하는 편이 재무적으로 더 낫다는 판단이 나온 셈이다.
이런 가운데 김병주 MBK 회장의 사재 출연 문제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회장은 약 14조원(97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재 출연과 관련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MBK는 지난 3월 입장문을 통해 “소상공인 거래처에 신속한 대금 결제를 위한 재정 지원을 마련하겠다”며 김 회장의 사재 투입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으나, 이후 실제 이행 여부나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정치권과 노동계는 김 회장을 향해 보다 명확한 책임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 3월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서 “김 회장이 1조5천억~2조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하지 않으면 국민적 분노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역시 “사재 출연의 구체적인 규모와 방식, 시기 등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며 투명성 부족을 문제 삼았다.
한편 최근 김 회장이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과 비공개 면담을 가진 사실도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이 1조원 이상 사재 출연 요구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됐지만, MBK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주주의 책임 회피 논란은 이어지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홈플러스 사태 해결을 위한 청문회 개최 결의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일각에서는 이번 홈플러스 사태가 MBK가 적대적 인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고려아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홈플러스처럼 과도한 차입을 통한 LBO(차입매수) 방식이 적용될 경우, 인수기업에 막대한 부채가 전가되고 경영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임직원 고용 불안은 물론, 중장기적인 사업 경쟁력 저하와 미래 성장동력 위축 등 부작용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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