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암사터에 서 있었던 비석으로 고려 말의 승려인 나옹 화상(1320∼1376)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나옹은 1344년 회암사로 들어가 불교에 입문했다. 1358년 원나라에서 돌아와 왕의 부름을 사양하고 구월산과 금강산 등지에서 은거하다 회암사로 다시 돌아와 절을 크게 새로 지어올렸다.
비의 모습은 당나라의 형식을 닮은 복고풍으로 비의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았다. 즉, 비의 몸돌 윗부분에 두 마리의 용을 새긴 후 그 중앙에 비명칭을 새기는 공간을 뒀다. 비를 지고 있는 돌거북은 큰 돌을 단순한 조각기법으로 새겨 다소 추상적으로 다뤘으나 비머릿돌에 새겨진 용의 조각은 정갈하면서도 역동적이다.
비의 글씨는 예서체로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와 중원고구려비 이후 고려 말에 와서 처음이다. 이는 당시의 예서 연구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한 예다. 국가유산청 제공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