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투지(鬪志)

안동찬 새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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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인 지난주 금요일 새벽에 국가대표 축구팀이 한국의 여름보다 더 뜨거운 날씨인 이라크의 바스라에서 열린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에서 이라크를 2 대 0으로 이기고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라크의 한낮 기온은 45도를 넘고 오후 9시가 넘어서 열리는 경기인데도 35도라고 중계 캐스터가 말했다.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축구 종가 잉글랜드도, 아트사커 프랑스도 해 보지 못한 것으로 세계적으로도 평가받는 대단한 일이다.

 

필자는 1998년 5월 베트남 하노이를 여행한 적이 있다. 시내 중심에 있는 커다란 마트에 들렀는데 가전제품 매장 가득히 월드컵 개막에 앞서 대형 TV를 좋은 조건으로 특별할인 판매한다는 전단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매장을 오가던 모습이 신기했다. 왜냐하면 베트남은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본선에서 경기를 할 수 있는 나라는 32개국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보다 객관적으로 축구 실력이 좋은 나라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해 본선에는 관중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나라들도 많이 있다.

 

축구 경기의 게임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양편 11명이 손을 사용하지 않고 발과 온몸을 이용해 패스와 드리블로 상대편 골문에 공을 더 많이 넣는 팀이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고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전 세계인들을 들썩이게 한다. 특정 국가에 대해서는 절대 지면 안 되는 라이벌 관계가 형성돼 대한민국이 일본과의 경기에는 무조건 이겨야 하기에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을 하기도 하는데 태국과 베트남,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잉글랜드와 독일,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과 포르투갈, 멕시코와 미국도 한일전과 같은 대단한 라이벌로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배경이 얽혀 있다.

 

축구 경기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당연히 실력이 좋아야 하지만 그 외에도 변수가 많이 있다. 이번 경기에서는 전반 22분 이라크의 주 공격수 알리 알 하마디가 우리나라 수비수 조유민 선수의 얼굴을 걷어차 퇴장당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1명이 퇴장당한 이라크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고 홍명보 감독이 후반전에 교체한 선수 2명이 상대를 압도하는 탁월한 실력으로 두 골을 넣어 쉽게 이겼다.

 

필자는 오랜만에 새벽잠을 포기했지만 맘 편하게 응원하며 즐겁게 애국할 수 있었다. 나는 즐겁고 편했지만 승리를 위해 뜨거운 모래바람을 가르며 승리를 이룬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수비수 조유민 선수의 ‘투지’가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경기가 시작돼 치열하게 볼 다툼을 하는 중 상대 선수의 발이 자기의 얼굴을 향해 날아올 때 꿈쩍하지 않고 끝까지 볼을 패스한 후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조유민 선수의 얼굴은 축구화 스커트에 쓸려 상처가 나고 피가 났지만 절대로 피하지 않는 강력한 정신력의 투지가 아름다웠다.

 

나의 삶을 돌아본다. 상황에서 쭈뼛거리지 않고 손해인 줄 알지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뜨겁게 헌신하는 투지가 내게 있는가.

 

교회 앞에 뜨거운 여름날을 기다리고 있는 수국 화분이 있다. 꽃이 얼마나 예쁜지 교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세차게 부는 바람에 그 화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넘어진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놓고 뒤돌아보면 투지 있게,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화분에 물을 가득 담아 두기로 했다. 물이 가득한 화분이 넘어질 때도 있지만 또 물을 채워 예쁜 꽃을 피워 교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꽃과 함께 포기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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