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비좁은 울타리 안에서 돼지나 닭 등을 기른다. 가축 동물권이나 동물 복지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가축들은 면역력 저하로 고통을 겪는다. 집약적 축산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경기를 벌이는 과정에서 소가 죽는다. 관객들은 이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투우나 로데오 경기가 그렇다. 오락을 위해 동물을 이용한다.
단지 겉치장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벗겨 낸다. 가죽 생산 과정이다. 쓰임새는 신발, 옷, 가방, 벨트, 패션 액세서리, 자동차, 실내장식 등 다양하다.
동물학계는 이를 종차별주의(Speciesism)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인류에게도 폭력적 지배의 정당화 도구로 작동해 왔다고 지적한다. 동물을 상품화하고 노동력으로 전유하며 소비하는 구조가 노동자와 소외된 인간 집단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특히 대표적인 동물권리 운동가인 디네시 와디웰 시드니대 교수는 인간의 동물에 대한 폭력을 고발한다. 그는 생물의 한 종에 불과한 인간이 다른 종의 생물을 단지 식량으로 활용한다는 이유로 멸종에 가까운 살육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믿어온 수천년의 지적 전통과 인간이 지구상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인간 주권 논리가 동물에 대한 착취와 살육을 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생태계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갖게 된 건 동물을 지배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우발적인 역사·생물학적 조건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힘이 곧 권리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 주권 논리가 동물은 물론이고 인간에게도 폭력적 지배의 정당화 도구로 작동해 왔다. 동물을 상품화하고 노동력으로 전유하며 소비하는 구조가 노동자와 소외된 인간 집단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인간 주권의 허상에서 벗어나야 인간과 동물이 함께 기나긴 전쟁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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