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고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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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오늘 강사진/음악부문/모리스라벨/미술부문/폴 세잔느/시 부문/에즈라 파운드/모두 결강/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 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교실 내에 쌓인 두꺼운 먼지가 다정스러움./김소월/김수영 휴학계/...브란덴브로그 협주곡 제3번을 기다리고 있음....

 

명동 백작의 주인공들은 궁색해도 기품이 있다. 이봉구나 김수영은 더욱 백작다운 품위를 지켰다. 김종삼의 시인학교 멤버도 부문별 거장의 멋이 있다. 공초 오상순이 종일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모습, 대한민국 김관식은 술 마시며 놀다가 일찍 갔다. 그는 최소한 쩨쩨하지 않고 예술가로서의 끼와 주당의 자존심을 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예술이었던 고뇌와 헌신 그 이상의 까닭이었을 것이다.

 

고등동과 화서로를 잇는 고등동성당 근처 고화로에서 오래된 골목을 발견했다. 돌담길 추녀에서 햇빛을 가린 채 그림을 그리다 문득 버려진 벽시계와 온도계를 누군가가 옹벽에 걸어놓은 걸 발견했다. 초침은 움직이고 있었으나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분침과 시침은 멈춰 있다. 어떤 벽 아래엔 초록의 박하가 자라고 있는데 그 위에 호소문을 매달아 놓았다. ‘나도 살고 싶소! 자르지 마시오, 내 이름은 박하라오.’

 

시간은 보이지 않지만 겸손한 척 힘이 세다. 한 시대를 바꾸고, 뒤집고, 지고 나는 힘이 있다. 고약하지만 그것은 과거까지 남겨둔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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