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빛수원] 수원을 빛낸 독립운동가 1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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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이 지난 3월 삼일절을 맞아 수원시청 로비에 마련된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수원시 제공

 

80년 전 뜨거운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수원에서는 독립운동가의 활동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널리 알려진 인물들 외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묵묵하고 굳건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활동하며 희생했다.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빛나는 오늘을 선물 받은 후손들의 의무다. 현충의 달을 맞아 수원시가 발굴한 11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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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독립운동가 김향화. 수원시 제공

 

◇ 김향화, 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선창한 의기(義妓)

김향화의 본명은 김순이다. 1897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 수원으로 이사했다. 생계를 위해 기생이 됐으며, 수원을 대표하는 기생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1919년 3월29일 김향화는 기생 33명과 함께 위생검사를 받기 위해 자혜의원(화성행궁 봉수당)으로 가서 만세를 부르고 쫓겨나면서도 수원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일제의 감시와 탄압에 이름을 바꾸고 숨어 살았다. 수원시가 서훈을 이끈 첫 인물로, 2009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 이선경, 모진 고문으로 희생된 수원의 유관순

이선경은 수원면 산루리에서 1902년 태어났다. 지금은 생소한 이름 ‘산루리’는 수원화성 팔달문 외곽에 형성됐던 마을이다. 숙명여학교에 진학한 뒤 1919년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독립을 위해 투신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수원 출신 서울 유학생들과 함께 구국민단을 결성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간호원으로 독립운동을 돕고자 결심하고 1920년 군자금을 받아 상해로 떠나려다 서울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 모진 고문에도 독립운동 의지를 당당히 밝히는 기개를 보여줬다. 이선경은 9개월의 옥고 끝에 풀려났지만 석방 9일만에 가족들 품에서 순국했다. 2012년 애국장을 받았다.

 

◇ 유병기, 대한 독립 의지 고취한 언론인

수원 성호면 가장리 출신으로 1895년 태어난 유병기는 1921년 창간한 월간 잡지 ‘신천지’에서 활동한 기자였다. 신천지는 일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어 총독부의 검열과 탄압을 받던 잡지였다. 유병기는 1923년 8월 ‘모든 약자 계급에 호소하여 단결을 촉구함’이라는 글을 썼고 이 글은 9월호에 게재됐다. 이로 인해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4년 8월 출옥했다. 2020년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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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장주문. 수원시 제공

 

◇ 장주문, 소작농의 애환을 보듬은 청년 활동가

1906년 수원 양감면에서 태어난 장주문은 1928년부터 수원군 양감면에서 활발한 청년 활동을 한 인물이다. 양감청년회 집행위원, 야학원 교사, 수원청년동맹 순회위원, 신간회 수원지회 집행위원 등으로 활약했다. 특히 수원군과 진위군을 묶어 창립된 수진농민조합에 가담해 소작쟁의 지도 및 해결에 적극 참여했다. 이후로도 비밀결사를 조직해 활동하는 등 지속적인 활동으로 총 세 차례 체포됐고 1933년 3월 석방됐다. 2020년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이겸승, 안중근 의거로 불붙은 독립운동 투혼

이겸승은 수원면 남수리 출신으로 1891년 태어났다. 1910년 3월 제주도에서 ‘안중근 군과 이별함’이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는데 ‘우리 2천만의 독립 정신과 4천년의 신성한 역사를 발표하였음은 안중근 혼자의 광영일 뿐만 아니라 곧 국가의 빛나는 위업’이라고 평가하고 독립운동 투신 의지를 암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겸승은 이를 대한민보사에 게재 의뢰했는데, 이 과정에서 체포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월을 선고받았다. 2020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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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차계영. 수원시 제공

 

◇ 차계영, 잡히고 잡히고 잡혀도 꺾이지 않은 결기

수원 산루리에서 1913년 태어난 차계영은 수차례 체포당하면서도 일제에 굳건히 맞선 강한 의지를 보여준 인물이다. 1930년 서울의 조선총독부 산림부 급사로 취직한 그는 비밀결사 독서회에 참여했다. ‘뉴우스’라는 인쇄물을 발행해 회원들에게 배포하고, 만주사변에 반대하는 반전 격문을 살포하는 등 활동을 하다가 1931년 첫 번째로 체포됐다. 2020년 애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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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구현서. 수원시 제공

 

◇ 구현서, 태평양전쟁 관련 소문내 잡혀간 기차 수리공

1921년 수원 반월면 초평리에서 태어났다. 태평양전쟁으로 패망이 가까워진 1944년 8월 용산역에서 기차 수리공으로 근무하던 그는 동료들에게 태평양전쟁에 대한 말을 전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1년의 옥고를 치렀다. 그는 “조선인 비행사가 미국을 위하여 노력한 것은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할 때 조선 독립을 실현시키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2020년 애족장을 받았다.

 

◇ 박기서,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 위한 묘수를 내다

수원 성호면 오산리에서 1891년 태어났다. 1920년 서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원 정태유, 나상필과 만나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아 상하이 임시정부에 보내기로 하고 임시정부 공채증서를 발행하는데 일조했다. 이후로도 삼남지방 군자금 모집에 공을 들였던 박기서는 결국 체포돼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2020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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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홍종갑. 수원시 제공

 

◇ 홍종갑, 계급 투쟁으로 독립운동을 모색

홍종갑은 수원 성호면 세교리 출신이다. 무산자와 청년, 여성 등에 대한 사회제도의 모순을 비판하며 비밀결사 적색노동조합을 접하고 이에 참여했다. 수원에서 공장 노동자를 조직하고 운동 자금을 조달하다가 1935년 체포됐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2020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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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최경창. 수원시 제공

 

◇ 최경창, 공장에서 사회개혁을 꿈꾼 노동 독립 투쟁가

수원 성호면 세교리에서 1918년 출생, 1933년 적색노동조합에 가입해 노동자 규합을 실천했다. 1934년 안양 종연방직공장에서 일하며 격문 배포에 참여했다. 또 서울에서 반제국주의 비밀결사 ‘콤그룹’에 참여해 서울의 여러 공장과 거리에서 동지를 규합하는 활동을 했다. 202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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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홍종례. 수원시 제공

 

◇ 홍종례, 노동운동으로 독립투쟁 고취한 여성노동자

수원 성호면 세교리 출신이다. 1934년 5월 안양 종연방직공장 직공으로 근무하며 노동자를 규합하다가 검거됐으나 기소중지로 풀려났다. 이후 반제국주의를 표방한 ‘콤그룹’ 조직활동을 전개했다. 적색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하다가 1936년 12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2020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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