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이재명, 공정한 세상 꿈꾸던 ‘소년공’에서… 대한민국 리더로 ‘우뚝’ [2025 국민의 선택]

중학교 대신 공장行... 팔 다친 후 검정고시 매진
중앙대 법대 졸업 후 사법시험 합격 ‘삶의 전환점’
인권변호사·시민운동 중 ‘성남의료원’ 계기 정계 입문
사법리스크·도덕성 등 논란 딛고 ‘2전3기’ 끝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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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소년공 출신으로 노동자의 삶을 살던 그가 개천의 용이 돼 변호사가 되고, 성남시장을 거쳐 경기도지사, 그리고 두 차례 대권 도전 끝에 마침내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르기까지 매번 살아있는 신화이자 서민의 희망으로 자리를 잡아 왔다.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나라, 그것이 제 정치의 출발이자 목표다.” 이 당선인이 늘상 강조하던 ‘기회’라는 키워드는 그의 삶과 정치 여정 전체를 관통하며 정치로 말미암아 희망을 갖는 시대, 기회를 통해 성공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대를 꿈꾸게 했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여정의 밑바탕이 될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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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생애 첫 교복으로 대학교복을 맞춰 입고 간 중앙대 입학식(어머니와), 인권변호사 시절, 신혼 시절 (아내와). 경기일보DB

 

■ 안동에서 성남으로, 절망과 생존의 유년기

 

이 당선인은 1964년 경북 안동의 한 농가에서 일곱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삶은 가난 그 자체였다. 초등학교를 마친 직후 가족과 함께 성남시로 올라오며 경기도에 첫발을 디뎠다. 그의 삶에 중학교 진학은 꿈꾸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열세 살, 여느 아이들의 철없음이 가시기도 전 그는 공장에 취직해 가족의 생계를 도와야 했다.

 

장갑 제조공장에서 일하던 그에게 찾아온 산업재해는 위기를 극복하는 힘을 지닌 인물이란 걸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다. 왼팔에 장애를 갖게 됐지만 오히려 언제나 갈증으로 남았던 학업에 매진했다.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독학으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마치고 중앙대 법대에 진학했다. 1986년에는 출세의 지름길이라 불리던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새 삶을 살 법도 했다. 그 시절 사법고시 패스는 곧 인생 역전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반을 다지게 했던 노동자의 삶 속에 인권변호사로 남았다. 기득권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고 약자의 편에 설수록 마음속에는 ‘정치’라는 또다른 역사의 시작이 싹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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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①검정고시 수험표에 붙였던 사진, ②사법연수원 시절(아랫줄 중앙). ③2012년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경기일보를 찾아 모라토리엄 선언과 관련, 재정위기 극복사례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경기일보DB

 

■ 성남시장 시절, 복지 실험의 무대

 

첫 정치 도전이기도 했던 성남시장 시절의 이 당선인은 그야말로 시민을 위한, 시민만을 바라보는 정치의 표본을 보였다. 시청에 첫 출근 한 날 접한 시장실은 시장 부속실과 고충 처리 민원실까지 합해 500㎡에 이르는 소위 ‘아방궁’으로 최상층인 9층에 있었다.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 그는 2층에 있는 작은 도서관을 고쳐 시장실로 사용하기로 하고 기존 시장실은 시민들에게 돌려주기로 마음 먹었다. ‘성남시청 하늘 북카페’로 만들어 시민 공간으로 탈바꿈 시켰다.

 

성남시장이 된 그를 기다리는 건 6천억원이 넘는 빚이었다. 취임 12일 만에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재정난을 이유로 지급유예선언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치밀한 재정 확보 작전이 시작됐고 예산 재검토를 통해 불필요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면서 빚더미에 허우적대던 성남시를 8년의 시장 임기 동안 부채 제로 도시로 만들었다. 공직자의 의지에 따라 시정의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공약 95%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지방행정을 넘어 ‘이재명’ 이름 세 글자를 전 국민에게 각인시킨 각종 정치실험을 성공으로 이뤄냈다. 만 24세 청년에게 연 10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청년배당은 대한민국 최초의 청년 기본소득으로 자리잡으며 ‘이재명의 정책이 곧 전국의 정책’으로 확대되는 길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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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취임 직후 경기일보와 취임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경기일보DB

 

■ 경기지사 이재명, 대한민국 기준이 되다

 

두 번의 성남시장을 지내며 적재적소의 추진력이 곧 지역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걸 확인한 이 당선인은 2018년 경기도지사에 올라 ‘경기도를 곧 대한민국의 기준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그 포부는 곧 현실이 됐다. 매년 여름이면 경기도를 찾는 전국의 관광객들이 계곡의 불법 시설물로 고통받자 직접 계곡으로 가 철거에 앞장섰다. 그의 행보는 이번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 배경에는 단 하나가 있었다. ‘경기도의 자연은 도민의 것이어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과 학생들이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도 강구했다. 도내 어린이의 건강 증진과 농가소득 향상을 위해 도비를 투입해 ‘경기도 어린이 건강과일 공급사업’을 대폭 확대했다.

 

경기지역화폐를 도입해 전폭 지원했다. 공공배달앱인 배달특급을 선보였다. 공공임대주택의 모델인 기본주택을 추진했다. 그의 모든 걸음에는 서민의 행복이, 도민의 꿈꾸는 삶이, 위기에 강한 이재명이 짙게 남았다.

 

■ 첫 국회 입성 이어 당 대표까지

 

2021년 이 당선인은 민주당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첫 대권 도전에 나섰다. 0.73%포인트.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 중 가장 적은 표차로 안타깝게 좌절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민주당 내에서 이 당선인을 대체할 사람은 없었다. 그를 중심으로 민주당은 견고하게 뭉쳤다. 그렇게 같은 해 6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면서 다시 중앙정치 속에서의 힘을 키웠다.

 

성남시에서 시작해 경기도로, 인천으로 무대를 넓혀간 이 당선인은 특유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민주당의 당 대표로 선출됐고 이번 대선까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을 만들 정도로 역대 어느 후보보다도 견고하고 내실 있는 입지를 다져 갔다.

 

■ 기회와 도전의 상징, 그가 그릴 미래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 당선인의 변화는 그가 그릴 앞으로의 5년을 기대로 채우기 충분했다. 추진력과 결단력을 갖췄지만 호불호의 표출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거침없는 그가 이번 대선 경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들의 공약까지 하나씩 끌어안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은 그가 만들 대한민국이 한결 더 따뜻해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무엇보다 경기도민이 갖는 기대와 기쁨은 어느 때보다 크다. 사상 첫 경기도지사 출신 대통령을 대면하며 누구보다 경기도를 잘 아는 그가 수도권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고 도에 필요한 발전 방향을 국정과 함께 완성해 나갈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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