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시대 깨어 있는 유권자

김태진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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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유발 하라리의 신작 ‘넥서스’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중세시대 마녀에 대한 공포가 우연한 계기로 확산되고 이것이 수세기 동안 무자비한 마녀재판으로 이어졌던 역사에 대한 설명이 그것이다. 초기에 마녀에 대한 괴담이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저자는 ‘마녀의 망치’라는 책이 발간돼 당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마녀가 존재한다는 ‘상호주관적인 실제’가 급속히 퍼져 나가 잔혹한 마녀사냥이 촉발됐다고 쓰고 있다. 마녀사냥은 중세의 새로운 정보기술인 인쇄술의 발달에 기인한 아이러니한 비극이라는 얘기다.

 

이야기로 시작해 문자 발명, 인쇄술 발달, 산업사회 태동, 그리고 인터넷 사회를 거쳐 AI시대에 접어든 정보기술 발전사를 돌아보면 마녀의 존재 같은 허황된 음모론이 시대에 따라 주제와 대상을 달리할 뿐 항상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부정선거 음모론 역시 가짜뉴스와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뉴스들이 뉴미디어 시대의 강력한 매체인 유튜브와 맞춤형 알고리즘을 통해 구독자들의 편향적 사고로 고착된 결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부정선거에 대한 확증편향은 레거시 언론에 대한 불신과 함께 디지털 매체를 통해 쉽게 확산되는 듯하다.

 

최근 부정선거에 대한 다큐영화가 상영됐지만 기존의 주장들과 크게 다른 점은 발견하기 어렵다. 이미 선관위가 해명했거나 법원 판결로 부정이 없었음이 입증된 사례의 재탕이었다. 하지만 대중문화인 영화의 영향력은 크다. 우려되는 점은 영화처럼 감성적인 정보전달 매체를 통해 확산되는 거짓정보가 선거관리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민주주의에서 투표가 갖는 참여의 가치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단체는 투표소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행동 매뉴얼까지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고 하니 자칫 유권자들의 투표에 피해를 주지 않을지 걱정도 든다.

 

그럼에도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선관위 위원으로서 부정선거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기보다 이 말씀을 드린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깨어 있는 유권자가 만들어 간다. 쏟아지는 음모와 가짜뉴스로부터 지켜야 할 것은 유권자의 냉철한 균형감각이다. 선거에 대한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주장과 정보를 접하는 경우에도 이념적 대립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지난한 대화와 설득으로 진실과 화해를 추구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하라리의 경고처럼 우리는 AI 정보혁명 속에서 과거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전대미문의 불확실한 시대에서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르는 대통령선거가 오늘이다. 깨어 있는 유권자의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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