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가로지르고 외계 문명과 만나며 독자들을 ‘다른 세계’로 이끄는 ‘SF’가 또 한 번 찾아왔다. 국내 SF의 기반을 닦은 김보영, 배명훈 작가가 각각 데뷔 21주년, 20주년을 맞아 신간을 발표했다.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고 미지의 길을 개척하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두 작가의 ‘SF’를 소개한다.
■ 고래눈이 내리다
한국 SF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소설가 김보영이 ‘얼마나 닮았는가’ 이후로 5년 만에 신작을 발표했다. 이번 소설집에는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됐다.
‘세계의 훌륭한 SF 선집’에 실린 작품이자 로제타상의 후보작이었던 ‘고래눈이 내리다’를 표제작으로 해 심해 생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생태 파괴의 문제의식과 지구 회복의 염원을 담아냈다.
이 작품과 짝을 이뤄 주제를 공유하는 ‘귀신숲이 내리다’는 버려진 우주 거주구에서 자라나는 버섯과 산호의 강한 생명력으로 모든 폭력과 공해로 파괴된 세계에 깃들 회복의 힘을 감각하게 한다.
이와 함께 감재사자의 신화를 통해 거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의 굳건한 내면이 드러나는 ‘까마귀가 날아들다’, 서버로 이주한 인류가 난개발과 무분별한 소비로 인해 자연물을 삭제해버리려는 시도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인 ‘너럭바위를 바라보다’ 등 시의성과 유머를 갖춘 엽편도 즐길 수 있다.
죽음을 다른 세계로의 전환으로 이해하는 ‘봄으로 가는 문’, ‘껍데기뿐이라도 좋으니’를 통해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이들에게 가슴 깊은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작가가 영화 ‘설국열차’의 시나리오 설정과 아이디어 작업을 하며 기획한 ‘새벽 기차’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신간은 과학적이고도 신화적인 세계에서 신선한 반전들을 선사하며 SF의 경이감을 전해온 김 작가의 특징이 잘 녹아들었다는 평을 받는다. 기계와 유기체, 동물과 인간의 구분을 허물고 인간과 문명 중심의 사고를 뒤집는 급진적인 상상력이 가득하다.
■ 기병과 마법사
소설가 배명훈이 데뷔 20주년을 맞아 독창적인 한국형 판타지 소설 ‘기병과 마법사’를 펴냈다. 장편 소설로는 3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이다.
이번 작품은 한반도 북부 너머의 대륙을 떠오르게 하는 상상의 공간과 전근대를 연상하게 하는 상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이-판타지’다.
영민하고 단단한 스물일곱살의 여성 주인공 영윤해가 자신의 힘을 발견해 각성하고 불가항력적인 어둠의 괴물을 퇴치하는 구원과 연대,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영윤해는 역사의 끊어진 고리를 다른 시대 예언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연결하며 독재와 폭정을 저지르는 파괴적 군주와 맞서며 파멸로 얼룩진 세계를 구한다.
책은 한반도와 전근대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가상의 세계를 관찰하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스스로 움직이는 세계와 인물에 대한 작가 특유의 통찰을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충분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깊이 있는 개념적 구상을 전개하고, 우리 문화권에서 가능한 판타지 세계를 정교하게 설계했다.
이에 이번 신간은 친숙한 세계, 독보적 인물들의 활약, 속도감 있는 전개, 뛰어난 전투 묘사 등으로 재미와 완결성을 모두 아우르며 배 작가의 여전한 저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