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군용차 재활용으로 시동, 서울 인접성 살려 산업 본격화 자체 생산라인 구축·혁신 속도... 품질 장착 부품업도 수출 ‘탄탄’
광복 80주년 특별 기획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5. 국가 경제 심장 ‘자동차 산업’
광복 이후 대한민국 국가 재건 사업이 이뤄졌다. 수도인 서울과의 인접성을 살려 경기·인천지역에선 본격적으로 ‘교통 발달’이 시작됐다. 특히 필수적인 이동 수단으로 자동차가 부각하면서 지역 내에서도 대망의 ‘자동차 산업’ 역사가 꿈틀거렸다.
폐허나 다름없던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미군이 폐차한 군용 차량의 부품을 재활용해 간이 자동차를 만드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자체 생산 라인을 튼튼하게 구축, 글로벌 자동차 제조국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왕실과 부유층만이 타던 ‘자동차’는 1900년대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그 자동차가 상용화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55년 8월, 국내 제작 자동차의 최초 모델인 ‘시발(始發) 자동차’가 제작되며 산업이 움텄다.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에서 만든 시발자동차는 드럼통을 두드려 편 차체에 미군이 버리고 간 지프 엔진을 분해해 활용했다. 특히 바디, 프레임, 타이어, 헤드라이트 등이 모두 국산이라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컸다. 자생적인 자동차 제조가 가능하다는 희망과 같았기 때문이다.
경기·인천지역에서 자동차 산업의 포문을 연 업체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건 오늘날 세계 자동차 시장의 선두격에 있는 ‘현대자동차’다. 현대자동차는 아산 정주영이 1940년 3월에 인수, 경기도 경성부 아현정(현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운영했던 아도써비스라는 자동차 정비소가 근원으로 알려져 있다.
KG모빌리티(舊 쌍용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국내 자동차 기업 중 최장수 기업을 자랑하는 KG모빌리티는 1954년 한원그룹, 한원미술관의 하동환 명예 회장에 의해 설립, 1970년대 평택지역에서 자동차 산업 발전을 도모했다.
또 다른 글로벌 자동차 제조기업 기아는 1965년 설립된 아시아자동차공업주식회사로 시작을 알렸다. 한국GM 전신인 새나라자동차공업 역시 1962년 8월 경기도 부평(현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러한 업체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엔 지역 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뒷받침이 있었다.
경기도에는 1968년 안산에서 대원산업이 자동차 시트 생산을 위해 공장을 가동했으며 1972년 서진산업이 군포에서 차체와 휠 등 자동차 부품 생산을 도맡았다.
인천에서도 1974년 설립된 경신이 자동차 전장부품 생산을, 1994년 문을 연 경우정밀이 친환경 자동차 부품과 안전벨트 및 에어백, 엔진 부품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며 국내 생산 자동차의 품질과 성능을 한껏 끌어올렸다.
자동차·부품 제조기업들의 밤낮 없는 노력은 눈부신 성장을 가꿨다. 자체 생산을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1950년대를 지나 1999년 5월12일, 대한민국은 누계 1천만대의 자동차를 수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한민국의 대표 수출 분야로 거듭난 자동차 산업은 최근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망망대해 같았던 산업을 자체 생산 및 개발 수준까지 끌어올린 과거의 성장경험을 기반으로 이번 위기도 현명히 헤쳐나간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KG모빌리티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산업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낸 산업군”이라며 “우리 민족의 광복 긍지와 같이 항상 위기를 극복해 온 산업인 만큼, 앞으로도 역사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 기술 집약체 ‘자동차’, 제조·부품업체 동반 성장 대한민국 수출 효자 ‘우뚝’
■ 마당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최장수 자동차 기업의 역사
한국전쟁 등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 ‘잔해물’로 탄생하게 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어느새 기술의 집약체로 거듭났다. 관련 기업들은 그간의 노하우를 모아 전기, 수소를 활용한 친환경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
‘국산 자동차’는 연이은 실패를 통한 성공의 산물로, 그 안에 우리 기업들의 애환이 녹아있다. 50년 전 평택에 뿌리를 내리며 지역의 터줏대감이자 산업의 역군으로 자리매김한 국내 최장수 자동차 기업 ‘KG모빌리티’는 자동차 산업군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린다.
KG모빌리티의 탄생은 서울 마포구 창천동 한 집 앞마당에서 시작됐다.
자동차 수리공장에서 일하던 당시 24세의 청년 하동환은 한국전쟁 이후 직접 차를 만들기로 결심, 1954년 본인의 집 앞마당에 천막공장을 짓고 자신의 이름을 딴 ‘하동환 자동차 공장’의 문을 열었다. 하동환은 공장을 제작소로 확대해 미군이 쓰다 버린 트럭 부품, 드럼통 철판 등을 조립해 버스를 만들었고, 1955년 세상에 공개했다. 이 버스가 우리나라 최초의 버스로 기록됐다.
1962년 정부의 자동차 조립공장 정리계획에 따라 사업 정리 기업으로 지정된 하동환 자동차 공장은 동방 자동차공업과 합병, ‘하동환자동차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며 기업을 지켜냄과 동시에 기술력을 향상했다.
명실상부 대형 상용차·특장차 전문 제작 회사로 성장한 하동환자동차는 1977년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또 한 번 사명을 변경하고, 터를 옮기기로 결심한다.
하동환자동차는 동아자동차공업이라는 새 명패를 달고, 경기도로 이동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부피가 큰 차량 제작에 용이한 대규모 부지에 고속도로가 인접한 ‘평택’을 새 둥지로 선정, 본격적인 동아자동차의 신화를 써 내려가게 됐다.
■ ‘쌍용자동차’, 평택의 랜드마크가 되기까지
평택 상륙 이후 군 특장차 납품 등 연이은 호재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동아자동차는 1986년 ‘쌍용그룹’ 품에 들어가게 됐고, 1988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쌍용자동차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쌍용차는 한국 최초의 스테이션왜건형 4륜 구동차 ‘코란도 훼미리’, ‘칼리스타’ 등을 잇달아 출시하며 국내 독보적인 4륜 구동차 제조업체가 됐다.
하지만 그 명성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91년 경쟁사의 유사 모델 출시, 1997년 외환위기 등을 쌍용차의 입지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쌍용차는 포기하지 않는 뚝심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오랜 기간 대형차를 전문 제조했던 쌍용차는 개발 경험이 전무했던 승용차 시장으로 발을 넓혔고, 1997년 ‘사장님 차’로 불리는 역사적인 차 ‘체어맨’을 꺼내들었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며 쌍용차는 수출에 주력했다. 2001년 독자적인 수출 망을 구축한 쌍용차는 세계 102개국의 대리점과 차량 공급계약을 맺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현지 조립제조를 위한 6개 제휴사를 선정해 시장을 확대했다.
■ 위기를 기회로…내실 다진 쌍용차의 화려한 부활
불굴의 정신을 증명해 낸 ‘국내 최장수 자동차 기업’ 쌍용차는 지난 2004년 상하이자동차그룹, 2011년 인도 마힌드라 그룹의 인수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했으나, 이내 주인을 잃고 매물로 나오게 됐다. 이후 에디슨모터스의 인수 시도가 있었지만 이 역시 무산되며 쌍용차는 또 한번의 위기를 맞았다.
우여곡절을 겪은 쌍용차는 지난 2022년 KG그룹의 품에 안착하며 ‘KG모빌리티’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18년 만에 다시 한국계로 복귀했다.
80년에 가까운 역사가 쓰이는 동안 KG모빌리티는 위기를 극복하고 시련을 이겨내는 생명력을 보여줬다. 한 번의 워크아웃과 두 번의 법정관리는 쌍용차의 내실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 현재 KG모빌리티는 신차 ‘토레스 EVX’, ‘KR10’ 등 잇단 효자모델 출시를 통해 고유한 헤리티지를 구축하며 성공적인 재기에 가까워지고 있다.
KG모빌리티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 산업은 광복 이후 숱한 위기를 극복해 오며 경인지역의 경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해 왔다”면서 “KG모빌리티 또한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경인지역의 경제를 책임지고 이끌어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자동차의 뼈대와 심장을 만드는 ‘경우정밀’
KG모빌리티 등 국내 자동차 산업의 눈부신 성장 주춧돌에는 ‘부품 산업’이 있다. 특히 경기·인천지역에서 자동차 부품업계를 지켜온 중소기업들의 노고가 컸다.
1990년대부터 인천지역에서 자동차 부품 산업을 이끌고 있는 경우정밀은 ‘정확하고 튼튼한 제품이 곧 신뢰’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31년 동안 자리를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다.
경우정밀은 지난 1994년 자동차 사업이 급속히 발전하던 시기, 박용오 전 대표의 신념 아래 인천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단 1대의 프레스 기계만 가지고 시작한 사업은 쉽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잠을 줄여가며 밤낮 상관없이 일했고, 신규 고객사를 찾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그의 노력으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경우정밀도 1997년 외환위기 위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경우정밀은 좌절하지 않고, 제조 효율화와 품질 안정화에 집중하며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데 집중했다. 덕분에 2000년대 중반부터 하이브리드카용 정밀 부품 개발에 착수, 경쟁사보다 한발 앞선 기술 선점에 성공했다.
■ 외환위기 이겨낸 경우정밀, 인천 자동차 부품 산업의 미래를 그리다
위기를 극복한 경우정밀은 2012년 신축 공장을 확장 이전하고 2014년 기업 부설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품질 혁신에 매진했다. 2017년에는 스마트팩토리 사업을 시작, 자동차 부품 산업의 자동화를 준비했다.
2020년 아버지인 박용오 전 대표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박진수 대표는 아버지가 닦은 길 위에 새로운 기술과 미래를 얹어나가고 있다. 전기·수소 등 친환경차 시대가 열리자 경우정밀은 그간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미래차 부품 제조에 돌입했다. 스마트 제조 환경 전환을 준비 중인 경우정밀은 인공지능(AI) 기반의 공정 최적화와 금형 자동 보정 시스템 도입도 연구 중이다.
경우정밀은 창립 이후 31년 동안 한 번도 본사를 옮기지 않았다. 지역과 성장한 만큼 변화의 길도 함께 달려온 박진수 대표는 “기술은 결국 사람이 만들고, 그렇기 때문에 정밀한 기술은 사람의 태도에서 나온다. 기술을 향한 정직함이 결국 기업의 생명력을 결정한다고 믿는다”면서 “아버지의 창업 정신과 젊은 혁신의 균형을 맞춰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인천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 80년 질주, 경인지역 자동차 산업의 어제와 오늘
이러한 개척자들의 도전을 토대로, 뜨거운 성장 열망을 품은 경인지역의 자동차 산업은 지난 80년간 지역 산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자동차 통계는 1949년 처음 집계됐다. 당시 전국 자동차 등록 대수는 1만5천351대였다. 지역별 통계가 시작된 1954년에는 전국엔 1만1천543대의 자동차가, 인천을 포함한 경기도에는 약 11.2%인 1천288대가 도로 위를 누볐다.
10%에 불과했던 경인지역 자동차 등록대수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1956년에는 등록대수가 2천790대로, 지역별 집계가 시작된 지 불과 2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등록 차량은 화물차(668대), 승합차(261대), 승용차(138대) 순으로 업무용 차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쟁 이후 대대적인 재건 사업이 진행되면서 자동차 수요가 늘었고, 수요에 발맞춰 제조 기반도 확대되기 시작했다.
자동차 ‘제조’ 산업 안에서 지역·산업별 통계는 1990년대부터 확인 가능하다.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1993년 경인지역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체는 1천599개, 종사자는 8만2천666명으로 집계됐다.
30년이 흐른 2023년, 경기도와 인천에는 4천374개의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체와 9만9천259명의 종사자들이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지역의 종사자 수는 전국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 종사자의 약 37.8%를 차지하며, 산업 규모는 물론 일자리 창출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과시했다.
제조 기반의 확장은 자동차 부품 산업의 동반 성장을 불러왔다. 1993년 경기도와 인천에서 1천492개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가 가동됐고, 5만3천705명의 근로자가 국내 자동차 부품 제조를 위해 힘썼다. 이후 2023년에는 3천532개의 업체에서 6만4천187명이 자동차 부품 제조에 구슬땀을 흘렸다.
■ 대한민국 대표 효자 수출품…미국 관세 조치,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야
튼튼한 기반으로 성장해 온 국내 자동차 산업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지난 1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4년 연간 및 12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수출액은 6천838억달러(한화 약 956조9천781억원)다. 이중 자동차 수출은 708억달러(99조846억원)를 기록했다.
대미(對美) 총수출액은 전년 대비 10.5% 증가한 1천278억달러(178조8천561억원)를 기록했으며, 수출 1위 품목은 자동차로, 342억달러(47조8천629억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자동차 총수출액과 비교하면 50%가량이 미국에 수출되고 있다.
자동차 부품 수출 역시 미국 의존도가 높다. 지난해 미국 자동차 부품 수입액 중 한국산 비중은 6.4%, 금액으로는 135억달러(19조원)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효자 수출 품목인 자동차·부품 산업에 대한 글로벌 영향력이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이 부과한 관세 조치와 같은 대외 환경 변화로 ‘글로벌 자동차 제조국’이라는 타이틀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지난달 3일부터는 자국이 아닌 곳에서 제조된 자동차에 대해, 이달 3일부터는 수입 자동차 부품에 대한 25%의 고율 관세를 적용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가 경인지역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들에 새로운 위기가 되고 있음에도, 이들 업체는 이번 고비 또한 그간의 경험과 노력을 바탕으로 극복해 나간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경인지역의 공업 단지들을 중심으로 자동차 부품 기업들이 집적화되면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기술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상호 시너지를 창출한 것이 자동차와 부품 산업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다”며 “경인지역 내 자동차·부품 산업은 선제적인 기술 혁신과 연구 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미래 자동차 시대의 핵심 부품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자동차 산업은 친환경적인 전기차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 기술과 첨단 전장 산업이 융합되는 방향으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라며 “국내 완성차 대기업들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고도화된 전장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향후 30년간 자동차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별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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