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은 국회, 사법은 대법원, 행정은 정부다. 이 세 권력은 서로 견제하며 존재한다. 이 삼권분립이 국가를 국가답게 유지한다. 2024년 12·3 계엄에서도 우리는 목도했다. 대통령은 군경을 동원해 계엄을 선포했다. 국회는 심야 의결로 그 계엄을 풀었다. 사법부는 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혼란이 그렇게 물골을 따라 가듯 정리됐다. 그때 작동된 국가 시스템이 바로 삼권분립이다. 침해받지 않는 입법·사법·행정이 그렇게 소중하다.
갑자기 그 삼권분립을 논할 현안이 생겼다. 대법관에 비법조인을 앉힌다는 얘기다.
국회의안정보 시스템에 떠 있는 내용이다. 제안 법안 법원조직법 개정안, 제안 일자 2025년 5월23일, 제안자 ‘박범계 의원 등 10인’이다. 법안 목적이 설명돼 있다. 대법관의 업무 부담 경감과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보장이다. 구체적 법률 개정 방향을 밝히고 있는데 두 가지다.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는 것이 하나고, 비법조인을 대법관에 임명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다른 하나다. 여기서 논쟁이 불거진 것은 후자다.
최종심을 비법조인에게 맡기자는 제안인데 옳은가. ‘비법조인’의 자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하며 법률에 관한 소양이 있는 사람’. 이런 이들을 임명하면 얻게 되는 기대도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배경, 경력,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이 대법원으로 진입할 기회가 확대되고 변화하고 있는 사회적 흐름과 사회의 다원적 가치를 반영하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다원적 가치? 판결에 다양한 가치가 반영돼야 하나.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법률은 그런 법을 규범화한 것이다. 재판은 그 법률 해석을 행위에 적용하는 절차다. 배경, 경력, 가치관이 선입견을 줘선 안 된다. 또한 법관은 달라도 판결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 양형 기준이라는 약속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금의 ‘판결 충돌’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판사에 따라 ‘징역형-무죄-유죄’를 오갔다. 진영이 서로 ‘오염됐다’며 불신했다.
이걸 아예 외부인에게 맡기자는 건가. 좌·우, 노·사의 한 쪽에 재판봉을 주자는 것인가.
정도는 다르지만 비법조인의 참여 방식은 있다. 2008년부터 운영되는 국민참여재판이다. 20세 이상 국민이면 배심원이 될 수 있다. 법관 독점 견제, 각계 여론 반영 등 취지가 이번과 닮아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이 판단은 유보하는 대신 미국의 예를 설명해본다. 대표적인 배심원제 국가였다. 그런데 법관 재판이 높아지고 있다. 거꾸로 배심원 재판은 1%까지 낮아졌다. ‘비전문·편향’이 초래한 불신 때문이다.
정치 빼고 토론해 보자. 논쟁거리도 아니다. 대법관 독립이 사법부 독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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