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매물 무단 재임대… 피해자 두번 울린 ‘전세 보호제’

경매 종료까지 임대인 권한 행사
피해자들 주거·재산 동시 위협
LH 매입 협의 요청 1만848건
고작 472가구 완료 구제 4.3%뿐
공공기관 선매입 권한 확대 필요

지난해 7월9일 오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세피해 예방 및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공개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경기일보DB
지난해 7월9일 오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세피해 예방 및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공개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경기일보DB

 

700억원대 ‘수원 전세사기’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임차 주택을 무단 재임대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피해 매물에 대한 보호 제도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피해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변제 또는 구제를 위해 피해 매물을 경매에 내놓아도 낙찰 전까지는 임대인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허점 때문인데,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피해 매물 선제 매입권이나 임대인 재산권 제한 등 제동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22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행 민사집행법은 채무 불이행에 따라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최종 낙찰 전까지 부동산 소유권을 임대인이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 매물이어도 경매 절차가 종료되기까진 임대인이 재임대 등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를 악용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 17일 수원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피의자 측이 경매 중인 매물을 무단 재임대했다며 수원남부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 임대인은 실형을 선고 받고 수감 중인데, 가족 등 제삼자를 거쳐 다른 사람에게 피해자가 거주 중인 매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제도의 구멍은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정책도 발목잡고 있다. 현재 LH는 전세사기 매물을 경매·공매로 사들여 피해자에게 임대 중인데, 이 역시 경매·공매 종료까지 임대인에게 소유권이 있어 LH가 적극 매입·임대에 나서기 어려운 탓이다.

 

실제 지난달 23일 기준 LH가 전세사기 피해자들로부터 접수한 매입 사전 협의 요청은 1만848건이지만 매입 심의 완료 건수는 3천312건, 실제 매입을 완료한 주택은 472가구에 불과하다. 전체 요청 건수의 4.3%만 실제 구제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경매 개시 후에도 소유권은 임대인에게 있어 재임대 자체는 법적으로 가능하다”며 “이를 제한하려면 민법과 부동산등기법 개정이 필요한데, 사유재산 침해 논란 등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이 피해자 주거권, 재산권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며 제도 개정과 신설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동주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공공이 부동산 경매 전 단계에서 피해 매물을 선매입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등 긴급 임차권 보호제 도입이 필요하다”며 “또 피해자가 임대인으로부터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무단 재임차를 제한하는 법적·행정적 장치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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