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블랙리스트 작가

고광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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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블랙리스트 작가다. 필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질문과 분석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것이 성인이나 신이라 할지라도 분해되고 다시 조립돼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정치나 종교에 대해 견해를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필자는 청탁받은 원고를 쓸 때도 정치나 사회를 비판했고 단체의 성명서 발표가 옳다고 생각되면 이름을 올렸다. 모 문예지에선 필자의 글을 실어야 할지에 관해 편집회의를 하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어느 날 필자는 블랙리스트 작가가 돼 있었다.

 

한강도 블랙리스트 작가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필자와 함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됐다. 박근혜 정부는 사회적 이슈와 인권 문제를 다루고 이를 확장하려는 작가들을 불순 세력으로 봤다. 블랙리스트 명단이 밝혀지자 한국 문학계에 비상이 걸렸다. 군사독재정권의 악몽이 되살아나며 작가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제 글을 쓸 때마다 정부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없어지고 문학작품의 소재는 축소된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작가들은 정부의 억압적인 태도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블랙리스트 작가는 늘 불안하다. 관리 대상이 돼 예술가 지원 혜택에서 배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작가들은 글을 쓸 때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강이 쓴 ‘소년이 온다’도 정부에 의해 유해 도서가 되고 세종도서에 배제됐다.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행위다. 문화와 예술이 발전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예술의 부가가치는 국가의 국격을 높이며 제조업의 경쟁력도 높인다. 간섭받지 않는 절대 자유 속에서 작품을 집필할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작가의 기본적 인권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작가의 살생부다. 군사독재 시대에는 군인들이 작가의 책을 검열했고 박근혜 정부는 작가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지원 삭감으로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를 없앴다. 문학나눔 도서 보급은 우수 출판물을 선정해 전국 주요 도서관에 보급하는 사업이다. 문학나눔에 선정되면 출판사는 아르코 지원금으로 2쇄를 발행하고 저자는 2쇄의 인세를 받는다. 결과적으로 독자들은 작품성이 검증된 도서를 읽는다. 그런데 문학나눔이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가 블랙리스트에 적힌 소수를 부정적으로 보고 배제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문학나눔을 없앰으로써 문학인 모두에게 불이익을 줬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부는 박근혜 정부보다 더 나쁘다.

 

필자는 블랙리스트 작가로 윤석열 정부 초기 소송에서 승소했다. 그때만 해도 정부가 문학나눔을 없애는 등 광범위하고 심각한 행위를 할 줄은 몰랐다. 이제 6월3일이면 새 정부가 들어선다. 작가로서 새 정부에 바란다. 제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마라. 예술과 문학에 대한 지원 서류를 간단히 하라. 원로 예술인들은 서류 제출이 어려워 지원 신청도 못 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예술과 문학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고 정책을 펴기 바란다. 블랙리스트로 살생부를 만들어 관리하는 국가에서 노벨 문학상이 나왔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작가의 정신이다. 작가들은 절대 자유 속에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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