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송홧가루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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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송홧가루가 그렇다. 알레르기를 일으키거나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들어서다. 창문을 열어 놓고 외출하면 방 안이 온통 노란색 가루로 덮인다. 길거리에 세워진 자동차에도 수북이 쌓인다. 하루 종일 닦거나 세차해야 한다. 물로 씻어내도 이리저리 번지고 튀는 데다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꽃가루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송홧가루가 몸에 닿으면 피부가 빨갛게 붓고 간지러움 증세가 두드러져서다. 목이나 콧구멍 등이 부어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재채기하는 건 물론이다. 알레르기 약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순 있지만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없어지진 않는다.

 

너무 딱딱하고 현실적인가. 낭만도 있다. 물론 문학이나 영화에서지만 말이다. “송홧가루 날리는/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눈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이고/엿듣고 있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윤사월’이다. 송홧가루가 내리는 시점이 대부분 윤사월이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나 보다.

 

영화에도 등장한다. 1993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서다. 주인공 송화는 아버지 유봉으로부터 혹독할 정도로 판소리 교육을 받는다. 유봉은 결국 송화를 통해 판소리의 꿈을 이뤄보겠다며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눈이 멀어야 진정한 소리의 눈을 뜨게 된다는 지론이었다. 송홧가루 흩날리는 봄날에 송화는 결국 소리를 얻는 대신 눈을 잃는다.

 

국립수목원이 5월 초 송홧가루 날림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소나무, 구상나무, 잣나무, 주목 등 침엽수 4종의 화분비산(꽃가루 날림) 시기를 분석한 결과 이들 침엽수 4종의 평균 화분비산 시작 시기가 매년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대 초 5월 중순에서 지난해 4월26일로 보름 이상 앞당겨졌다.

 

송홧가루를 피하려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 자연은 때로는 우리를 번거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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