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천을 아래로, 붉은 천은 위쪽으로 이어 붙이세요.”
파주문화원 한 강의실에서는 전통규방 공예 홍연희 강사의 차분한 지시에 따라 머리에 제법 눈이 내린 10여명의 어르신이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쓱싹쓱싹 천을 자르는 가위 소리만 적막을 깰 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간혹 손가락이 무뎌 옆 사람의 작품을 슬쩍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어르신도 보였다.
어르신들이 실과 천 그리고 가위, 바늘 등 재료를 이용해 자르고 이어 붙인 지 30여분, 푸른 천과 붉은 천으로 아래와 위쪽을 두른 태극 모양의 모양체가 만들어졌다. 적막을 이겨낸 어르신들은 그제야 자신의 완성된 작품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날 조선 후기 왕실에서 등불로, 민간은 혼례식에서 사용하던 청사초롱과 향낭(香囊·향주머니)이 체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파주문화원이 운영하는 동아리 ‘손길’이 어르신뿐 아니라 청소년 등에게 전통규방 공예가치를 나누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손길이 닿은 어디든 간다는 의미의 손길은 파주문화원이 지역 맞춤형 실버문화활동 프로그램 취지로 2023년부터 동아리로 만들어 지난해부터 보폭을 크게 넓혀 가고 있다.
홍연희 강사를 비롯해 임태진 회장, 윤기숙 부회장 등 어릴 적 터진 양말 꿰매는 바느질 한 번씩 해본 경험 있는 30~60대 10여명이 주축이 돼 출발했다. 파주문화원에서는 전미란 부장을 파견, 지원했다.
주 체험은 청사초롱과 향낭 만들기다. 오랜만에 바느질하는 터라 회원들은 서툴렀지만 손재주가 있는 한국인 유전자를 지녀 향낭의 향기를 짙어지게, 청사초롱 불빛은 더욱 밝게 하는 등 금세 능숙해졌다.
완성된 작품은 파주 방촌문화제와 경기도문화원연합회 및 전국문화원연합회 실버문화 페스티벌 등지에 체험 프로그램으로 참가하면서 빛을 발했다. 간혹 한 땀 한 땀 수놓은 배냇저고리도 만들어 운정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출생신고를 한 가정에 전달해 산모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손길은 청사초롱 등의 아름다움에 반한 학교, 사회복지설, 지역아동볼봄센터, 다문화센터 등 20여곳을 초청해 현재 300여명을 수료시키는 등 우리의 전통문화 가치를 나눔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임태진 손길 회장은 “은빛 바늘로 수놓은 청사초롱에 이어 포용을 콘셉트로 녹차를 기반으로 한 전통 다도기법과 쑥, 보리, 밤 등을 주재료로 한 다식을 준비 중”이라며 “우리 전통문화 가치를 밝힌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손길이 닿은 데까지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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