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와 그 사이 사이에 자리한 명소를 실감나게 표현한 진경산수화.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듯 금강산의 절경이 거대한 원 안에 들어와 있다. 뾰족한 암산과 나무숲이 우거진 토산이 어우러진 금강산의 특징을 오로지 점과 선만으로 표현했다.
자신의 발로 수십 번 금강산을 드나들고 그것을 마음에 담아 그린 ‘금강전도’는 진경산수화가 지닌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겸재 정선의 대표작이다.
용인 호암미술관은 조선 회화의 거장 겸재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겸재 정선’전을 선보이고 있다.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 내년 정선 탄생 35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관을 비롯한 18개 기관과 개인 소장품을 더해 총 165점(국보 2건, 보물 7건 57점, 부산시유형문화재 1건)을 펼쳐보인다. 특히 국보·보물로 지정된 정선의 지정 작품 12건(국보 2건, 보물 10건) 중 8건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의미가 크다.
이번 전시는 정선의 대표작인 진경산수화뿐 아니라 사대부의 정취를 보여주는 관념산수화, 옛 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고사인물화, 화조영모화, 초충도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성취한 정선의 예술 세계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정선이 살았던 시대와 조선 후기 회화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시는 2부로 구성됐다. 1부 ‘진경에 거닐다’에서는 정선을 대표하는 진경산수화의 흐름과 의미를 조명한다. 정선은 1711년 첫 금강산 여행 후 수차례 더 방문하면서 금강산과 관동 일대의 다양한 명승지를 화폭에 남겼는데, 1부에서는 정선이 다양하게 변주한 금강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국보 ‘금강전도’와 함께 나란히 걸린 국보 ‘인왕제색도’를 만날 수 있다. 정선이 76세 때 그린 이 작품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붓의 힘이 느껴지는 힘찬 필력과 완벽한 구도를 갖는다. 작품 상단의 산은 연한 묵을 계속 쌓아올리는 정묵 기법을 사용해 입체감을 더했고, 하단엔 자욱한 안개를 배치해 인왕산의 절경을 담았다.
정선은 북악산 자락인 유란동에서 나고 자라 서울과 근교에서 평생을 살았다. 이에 1부에서는 정선이 한양 일대를 그린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정선의 한양 진경은 그가 살던 북악산과 인왕산 일대, 한강 일대와 서울 서쪽지역을 묘사한 작품들로 나뉜다. 이외에도 개성, 포항 등 다양한 지역의 명승지를 통해 정선 진경산수화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의 2부 ‘문인화가의 이상’에서는 문인화, 화조화 등 정선이 그린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한데 모았다. 정선은 명문가의 후손이었지만, 증조부 이후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며 한미한 가문으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정선은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존경 받던 대학자 퇴계 이황과 이어져 있는 집안임을 화첩을 통해 드러냈고, 집안에 앉아 독서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림에 남겨 문인 사대부로서의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도 했다. 전시에선 퇴계이황의 도산서원을 그린 ‘계상정거’, 책을 읽고 있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 ‘인곡유거(경교명승첩)’ 등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정선은 다람쥐, 쥐, 개구리, 풀벌레 등을 그려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남겼다. 자세한 관찰로 털 하나까지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화면 전체에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넣었다.
전시에선 개구리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한 ‘요화하마도’, 소나무를 통해 강인함과 조선의 안위를 염원한 ‘사직송’ 등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의 협력을 통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정선’에 관한 대규모 전시가 이뤄졌다”며 “이번 전시는 마치 장대한 금강산을 한 폭에 남아내듯 정선의 예술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6월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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