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작업실에서 아래를 내다보면 목련꽃 핀 동네가 아련히 다가왔다. 궤도를 이탈한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게 두렵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목련꽃 핀 카페의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답답한 시공간들이 지나간 연애편지를 꺼내 읽는 것처럼 시큼했는데 그마저 커다란 건물이 생겨 가려졌다. 오늘, 커피 향과 목련꽃 그늘진 골목을 거닌다. 사랑이 이별을 동반하듯 산다는 건 늘 걱정과 근심을 부여한다. 정의의 탈을 쓴 마키아벨리즘이 득세하는 시국이 나의 부근에도 사회적 좀비처럼 옥죄고 있다. 나를 해방하는 궁극은 무엇일까. 케테 콜비츠와 뭉크와 버지니아 울프의 환영들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내게 고여 있다. 자유롭게 살기도 어렵고 싫다. 우울증같이 고요한 자유는 더욱 절규의 절벽을 이룬다. 그래도 이 봄이 평온했으면 좋겠다. 수면마취에 든 검진자처럼 잃어버리든 잊어버리든 더 이상 산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구속 없는 자유를 갈망하는 노스텔직한 시 한 편 꺼내본다. ‘그리운 손길은/가랑비같이 다가오리/흐드러지게 장미가 필 땐/시드는 걸 생각지 않고/술 마실 때/취해 쓰러지는 걸 염려치 않고/사랑이 올 때/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봄바람이 온몸 부풀려 갈 때/세월 가는 걸 아파하지 않으리/오늘같이 젊은 날, 더 이상 없으리/아무런 기대 없이 맞이하고/아무런 기약 없이 헤어져도/봉숭아 꽃물처럼 기뻐/서로가 서로를 물들여 가리.’ -신현림, ‘사랑이 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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