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변호사 (법무법인 마당)
‘신탁’이란 위탁자가 수탁자에게 특정의 재산을 이전하거나 담보권을 설정하는 등의 처분을 하고 수탁자로 하여금 수익자의 이익 또는 특정의 목적을 위해 그 재산의 관리 기타 신탁 목적의 달성을 위해 필요한 행위를 하게 하는 법률관계를 말한다(신탁법 제2조).
그렇다면 X에 대해 금전채권을 가지고 있는 갑(위탁자)이 을(수탁자)에게 위 채권을 신탁하고 을이 X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그 판결금을 갑(수익자)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신탁계약도 효력이 있을까.
민사소송법(제87조)에 따르면 (일정한 사유를 제외하면) 오직 변호사만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 즉, 위 사안의 채권자 갑은 법대를 졸업해 법률 지식이 풍부한 (그러나 변호사는 아닌) 을을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갑과 을이 위처럼 신탁계약을 맺는 것을 허용한다면 이는 결국 간접적으로 변호사 대리 원칙을 회피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신탁법 제6조(소송을 목적으로 하는 신탁의 금지)는 ‘수탁자로 하여금 소송행위를 하게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신탁은 무효로 한다.’라는 명문의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다면 갑이 을에게 채권을 양도하는 것은 어떠한가? 즉 갑이 을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수여할 목적으로 채권을 양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채권양도를 금지한다는 명문의 규정은 없다. 그러나 대법원(2022년 1월14일 선고 2017다257098 판결 등 다수의 판결)은 ‘소송행위를 하게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채권양도도 신탁법 제6조의 유추 적용에 따라 무효’라는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다.
이처럼 신탁법 및 대법원 판례는 소송신탁 또는 소송 목적 채권양도를 금지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소송’에는 전형적인 소송뿐만 아니라 민사집행법에 의한 강제집행의 신청 등 사법기관을 통해 권리의 실현을 도모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한편 이처럼 법률에 의해 금지하는 소송신탁 또는 채권양도가 이루어졌다면 이후 설사 을이 변호사를 선임한 때도 그 하자가 치유되지 않는다(대법원 2006년 6월27일 선고 2006다463 판결 참조).
을이 X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소송신탁’ 또는 ‘소송목적의 채권양도’가 밝혀지면 법원은 그 소를 각하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갑과 을의 행위는 형사문제(변호사법 위반죄)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을이 제기한 소송에서 소송신탁 등의 사실이 밝혀지지 않음에 따라 을의 승소판결이 선고됐고 을은 판결금을 받았다. 그러나 을은 그 돈을 갑에게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에 갑이 을을 상대로 판결금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소송신탁 등의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 사안에서 법원은 탈법행위를 저지른 을이 탈법행위를 저지른 갑에게 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하는 것이 옳을까.
이러한 쟁점을 직접 다룬 선례는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소송신탁 금지 규정의 취지를 관철하기 위해 갑의 청구가 기각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