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은 삶의 현실을 어디까지 비벼낼까? [공연리뷰]

경기도극단 ‘부인의 시대’, 연극 3요소와 각 요소 간에 공감까지 더해져 
노래도 담아 행복한 ‘인생 비빔밥’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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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광 전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동화작가

 

외계인의 식탁에도 비빔밥이 있을까?

 

얼마 전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참가자가 낸 참치비빔밥이 논란이 되었다. 칼과 포크로 잘라 먹는 비빔밥이었다. 심사위원 한 사람의 ‘비빔이 없으면 비빔밥이 아니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두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비빔행위가 있어야 한다.’ ‘비빔행위가 없어도 된다.’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는 모른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개개의 요리는 대체할 수 없는 정체성과 미각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보편적인 ‘공감’이 더해야 특정의 음식이라 할 것이다. 음식은 문학, 영화, 공연 등에 소재이고 이야기 연결에 중요한 매개이다. 비빔밥은 여러 가지 식재료들을 함께 비벼서 나눠 먹는 특별한 행위가 있어 자주 등장한다.

 

연극의 3요소 하면, 무대 배우 관객이라 한다. 나는 여기에 ‘공감’을 더하고 싶다. 무대와 배우, 그리고 관객이 연극이라는 작품을 어떤 연결고리로든 공감해야 완성된 연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서로 공감이 없다면, 간이 안 됐거나 중요 식재료가 빠진 음식처럼 뭔가 부족한 작품이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경기도극단의 ‘부인의 시대’(김광보 연출, 이미경 작)는 연극의 3요소와 각 요소 간에 공감까지 더해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하면서도 잘 읽히는 무대, 배우들 간의 동작과 마음을 서로 연결하는 기막힌 연기력을 보여준 프로다운 열정,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과 각 요소들이 서로가 공감하고 어우러지는 비빔밥 같은 작품이었다. 거기에 울고 웃으며 배우들의 표정과 대사에 빠져들어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연출력도 연극을 몰입해서 볼 수 있는 힘이었다.

 

‘부인의 시대’는 우리가 뉴스에서 접해왔던 개발 예정지에 철거 대상 건물들의 세입자들과 철거하는 시공자 간의 갈등과 애환을 그린 작품이다. 안산의 어느 피부관리실 원장과 종업원인 한국인 남실장, 조선족 송실장, 필리핀에서 결혼이민 온 안젤라는 나름대로 말 못하는 사정과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거기에 건물철거를 위한 발파 등 공사장 소음은 생존에 본능을 더욱 압박한다. 돈 많은 체하는 사모님이 불신이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 갈등과 불신이 부딪쳐 극에 달하고 마침내 터져 산산조각이 난다. 네 여인은 발가벗겨지고 초라한 모습으로 내동댕이쳐진다. 파국의 문턱에 비빔밥이 등장한다. 그들은 그 부서진 조각들이 다시 모은다. 가슴속에 있던 갖가지 양금과 푸념 조각들을 양푼에 담는다. 이해와 믿음이라는 식재료를 더한다. 공감이라는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어 비빈다.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한 구절 한 고비 꺽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보는 인생사 연극 같은 세상사~.’ 노래도 담아 행복한 인생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다.

 

그러나 그들이 공감하고 화해했던 꿀맛 같았던 비빔밥의 현실은 오래가지 못했다. 모두 길거리로 쫓겨나고 영혼이 되어 UFO을 타고 우주를 이리저리 유영한다. 먼저 간 포장마차 박씨도 보이고 김사장도 보인다. 외계 우주에서 구름 속을 조용히 날며 현실에서 맛볼 수 없었던 마음의 편안함을 느낀다.

 

외계인의 식탁에는 비빔밥이 있을까? 아마 K-푸두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이니 있을 것이다. 외계 우주의 비빔밥은 눈물과 회한을 안고 사는 힘없는 서민들의 푸념 섞인 비빔밥이 아니길 바란다. 언제나 기쁨과 행복, 그리고 자존감이 꽃피는 비빔밥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비빔밥이 우주 어딘가에 꼭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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