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마음에 새기는 문장... 책방서 즐기는 필사

사각사각책방 [우리동네 독립서점]

책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발견하면 밑줄을 긋거나 옮겨 적는다. 얼마 후 그 문장들을 다시 발견했을 때 또 한 번 공감하기도 하고, 내가 적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 때도 있다. 필사전문서점 ‘사각사각책방’ 방지운 대표는 “필사를 하다 보면 지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한다.

 

'사각사각책방' 전경을 실크스크린으로 담은 작품. 서점제공
'사각사각책방' 전경을 실크스크린으로 담은 작품. 서점제공

 

‘사각사각’ 마음에 새기는 문장

 

2021년 2월 문을 연 ‘사각사각책방’은 필사전문서점이다. 서점 대표 방지운씨는 서점을 열기 전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한 ‘경기서점학교’를 다녔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창업스터디를 하는 등 책방 창업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신사업창업사관학교 11기로 창업지원금을 받아 책방을 열기까지 다른 책방과 명확히 구분되는 차별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방씨는 ‘필사’를 책방의 포인트로 잡았다.

 

“학창시절부터 문장 수집하는 걸 좋아했고 직장인일 때도 좋아하는 책을 컴퓨터로 필사하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그 취미를 살려 점자 봉사를 하기도 했고요. 그런 경험이 바탕이 돼 ‘필사’라는 콘셉트를 잡게됐습니다.”

 

책방을 열기 전까지 방씨도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오랜시간 직장생활을 하며 여러 면에서 많이 소진됨을 느꼈고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보자는 생각에 책방을 열었다. 본인과 자매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기에 큰 고민 없이 의왕시를 선택했다.

 

책방 개업 5년 차에 접어드는 사각사각책방의 ‘필사’는 주로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15~20명으로 구성된 필사 모임원들이 정해진 책을 읽고 각자 취향에 맞게 필사를 한 후 인증 절차를 거쳐 서로의 독서와 필사를 확인해주는 방식이다. 고전 책만 필사하는 모임은 24번째 책을 마쳤고 장르 구분 없이 방씨가 선정한 책을 필사하는 모임은 30기를 넘어섰다. 함께 읽고 필사한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는 질문엔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을 꼽았다. ‘시와 산책’은 시를 읽고, 산책을 하고, 삶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담긴 산문집으로 방씨가 이야기하는 필사 과정과도 닮았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비행기를 타고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필사는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 골목길 구석구석을 산책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곳의 바람과 냄새, 색깔, 날씨까지 오롯이 느껴보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과 그 느낌이나 단상을 옮겨 적다 보면 지금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서점제공
서점제공

 

‘등대’ 같은 책방

 

‘사각사각책방’의 책 기준은 방지운씨 본인이다. 본인이 좋아하거나 좋아할 만한 책 위주로 서가를 꾸미는 편이다. 필사 책 추천에 있어서도 초기엔 문장이 아름다운 책을 고르기 위해 애썼으나 지금은 어떤 책이든 괜찮다고 생각해 부담을 덜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마음에 새기는 구절도 필사하는 문장도 다르기 때문이다.

 

“필사의 또 다른 장점은 책을 깊이 읽으면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 고요하게 문장을 옮겨 적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평상심을 찾게 되고요. 개인의 능력에 따라 독특한 서체로 기록하거나 그림을 곁들이며 일상에서 예술을 마주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책에 온전히 빠져들 마음과 정성이 있다면 어떤 책인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필사모임 외에도 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낭독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낭독은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읊고 감상하는 등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마음에 드는 책과 구절을 나눈다는 점에서 필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간 진행해 오던 필사·낭독·글쓰기 모임 등을 더 활발히, 많이 진행하고 싶습니다. 또 인근의 고천중학교 학생들과 해마다 낭독필사 모임을 했는데 다른 학교 학생들과도 모임을 확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방에 뛰어들었지만 최근 출판계에 ‘필사’가 큰 축이 된 것도, 꾸준히 찾아주는 손님들도 고맙기만 하다는 방씨.

 

“저는 책방이 등대라고 생각합니다. 꾸준히 작은 빛을 깜빡이며 빛이 꼭 필요한 단 한 사람에게라도 끝까지 불을 비추는 등대로 남을 수 있길 바랍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