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책임진 아이, 엄마·아빠 보고 싶어 할 겨를이 없다 [그림자 가장이 산다①]

동생 등 돌보며 홀로 생계 책임...돌아가신 어머니 부채 상속도 
‘먹고사는’ 걱정에… 꿈은 뒷전 “복지사각지대 적극 발굴했으면”

AI가 그린 가족돌봄 청소년의 모습. 겉모습은 평범한 어린 아이처럼 보이지만 마음 속에 ‘가족돌봄’이라는 짐을 지고 있다. 그들은 복지 사각지대 속에서 보이지 않는 짐을 지고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림자 가장’과 같다. 챗GPT 제작
AI가 그린 가족돌봄 청소년의 모습. 겉모습은 평범한 어린 아이처럼 보이지만 마음 속에 ‘가족돌봄’이라는 짐을 지고 있다. 그들은 복지 사각지대 속에서 보이지 않는 짐을 지고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림자 가장’과 같다. 챗GPT 제작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집안을 책임져야만 하는 아이들이 있다. 과거 소년소녀가장으로 불렸던 ‘가족돌봄 청소년’들이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부모를 대신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픈 조부모를 살피다 우울증에 걸리며, 생계를 도맡는단 이유만으로 또래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이러라고 태어난 게 아닌데 청소년 가장의 삶은 어른이 되기 전부터 버겁기만 하다. 경기일보는 이들이 짊어진 무게를 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는 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신상진군(19·가명)은 올해 중학생이 된 여동생을 축하하며 맛있는 음식을 한가득 먹이고 싶었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사치나 다름없기에 오늘도 라면 하나를 나눠 대충 끼니를 때웠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자주 다투셨어요. 결국 저랑 동생만 데리고 강원도 집을 나오셨고 제가 아홉 살 때부터 셋이 안산에서 살았어요. 그동안 어머니는 생계를 홀로 책임지셨는데 1년 전에 암 투병을 하다 돌아가셨어요. 이젠 제가 책임져야죠.”

 

신군은 동생 몰래 밖으로 나왔다. 안산 곳곳의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저렴한 빌라 월세방을 찾아 나섰다. 번번이 조건에 맞는 매물은 없다. 하루빨리 이사를 가야만 하는데 기초생활수급 주거급여비 월 35만원,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월급 50만원으로는 두 남매의 의식주가 채워지기 힘들다.

 

지난해 여름, 신군은 어머니 사망으로 인한 공허함을 달래기도 전에 치료비와 생계비 명목으로 쌓였던 부채 2천만원을 물려받았다. 고등학생이던 그에게 ‘한정승인’, ‘임대차보증금 미납’ 등의 상황은 거액의 빚만큼이나 막막하고 어려웠다. 살고 있던 집마저 어머니 명의의 채무로 함께 묶인 터라 보증금을 전부 반납한 채 서둘러 새 집을 구해야 하는 처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직 강원도에 살고 계시고 저랑 가끔 문자 정도만 해요. 몸이 편찮으셔서 경제 활동은 하지 않으세요. 손가락 한 개가 없으신데 그거 때문에 옛날부터 사람들 앞에 서지 못하셨거든요. 워낙 일하기 싫어하셨고, 안 하기도 하셨고. 어쨌든 저희가 거기 가서 살 수는 없어요.”

 

큰 키, 훤칠한 외모 등으로 ‘연예인 해도 되겠다’는 말을 듣고 자라며 배우를 꿈꾸게 된 그는 주말에 종종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며 미래를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먹고사는’ 걱정 때문에 장래희망은 뒷전에 뒀다.

 

“조만간 입대를 해야 돼요. 저는 동생과 안정적으로 살고 싶고, 동생 학원도 보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선 될 수 있는 데까지 입대는 미뤄볼 생각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군대에 가면 동생은 어떻게 지낼지, 생활비는 어떻게 할지 걱정이에요. 동생한테 많이 미안해요.”

 

과거 대한적십자사나 행정복지센터 등의 도움은 있었다. 하지만 한시 지원이라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했다. 신군이 바라는 건 특별한 혜택이 아니다. ‘어린 가장’이 아닌 ‘평범한 청년’으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다.

 

“작년 8월에 행정복지센터에서 법률 도움을 연계해 줘서 법원에 한정승인 서류를 제출할 수 있었어요. 아직 결론은 안 났어요. 적십자에선 5개월 생활비 지원을 해주셨고, 시청 복지 관련 부서에서도 심리상담 등을 권했어요. 너무 감사하지만 저는 앞으로의 금전적 부분이 가장 걱정이에요. 다른 지원책은 어디서 어떻게 알아봐야 하는지 몰라요. 저희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가족돌봄 청소년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관련기사 : 지역·기관마다 정의 제각각…여전히 그늘 속 [그림자 가장이 산다②]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165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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