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으로 읽는 ‘미키 17’ [영화와 세상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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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지난 2월 말,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최신작 ‘미키 17’을 세상에 내놓았다. 여러모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지만 사실 이 영화를 뜯어보고 음미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키 17’은 ‘봉준호 월드’의 최신 확장·개정판일 뿐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관객들이 ‘새로움’을 찾아내기 힘들다는 것. 봉준호의 세계는 발전과 변주를 거듭해 왔다. 즉, 이제는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나 엔딩의 여운을 남겼던 ‘설국열차’에서 보여줬던 번뜩임과 궁금증은 다소 옅어졌고, 어느덧 안정 궤도에 접어든 익숙함과 반가움만이 맴돌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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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누구와 어떻게 ‘소통’하는가

이제 필요한 질문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의 작품을 보며 떠올렸을 법한 궁금증이다. 과연 ‘봉준호 영화’라고 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가. 삑사리, 블랙코미디, 계급우화, 사회비판…. 여러 키워드가 있겠지만 이런 점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핵심 키워드가 있다면 그건 바로 ‘소통’이라 정의하고 싶다. 즉, 봉준호의 영화는 어떻게 소통할지 방법을 찾고, 그 소통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따져보고, 이어지는 소통의 결과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지켜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미키 17’은 봉준호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위치에 놓일까. 직접 비교를 하면 ‘설국열차’와 ‘옥자’를 나란히 놓고 보는 편이 좋겠다. 세 편의 작품 모두 한국인들이 한국어만 사용해 소통하지 않고 외부의 존재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순간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설국열차’는 국적과 인종이 뒤섞이는 상황이었고 ‘옥자’에서는 여기에 더해 동물과의 소통 문제를 끌어들였고 ‘미키 17’에서 인간은 외계 행성에서 아예 다른 종족인 크리퍼까지 마주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미키 17’에서 주인공 미키가 마미 크리퍼와 개선된 통역기로 소통하는 장면이 특히 중요하게 다가온다. 앞서 마미 크리퍼는 자신들이 내는 소리가 인간의 머리를 터뜨릴 수 있다고 겁을 줬지만 사실 이게 전부 거짓이었다는 점이 이 구간에서 밝혀진다. 그러자 미키가 “너희 종족도 허풍을 떨 줄 안다니 어이가 없다”며 헛웃음을 짓고 허탈감을 드러낸다. 이처럼 다른 종족 간의 차이와 접점을 인지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소통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봉준호 영화를 움직이는 동력 역시 이런 소통 과정을 담아내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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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앞서 ‘설국열차’에서도 봉준호는 이런 장치들을 십분 활용했다. 열차의 보안책임자인 남궁민수는 한국인이고 영어를 잘 모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와 서양인들이 대화할 때 서로 통역기가 필요했던 걸 기억해 보자. 이때 흥미로운 건 남궁민수가 커티스 일행을 향해 짜증을 냈다는 점이다. 커티스 에버렛이 자꾸 남궁민수를 향해 “냄, 남(Nam)”이러면서 부르니까 “야, 니네들 똑바로 알아라. 내 성은 남궁이고 이름이 민수다. 성이 남이 아니라고”라며 윽박을 지르는데 통역기는 남궁민수가 이렇게 내뱉은 말들을 번역하지 못하고 오류를 낸다.

 

‘옥자’에서도 ‘동물해방전선’(ALF) 리더 제이가 미자와 대화를 할 때 통역가가 동원된다. 이때 제이는 대기업의 동물 착취를 고발하고자 슈퍼돼지 옥자를 활용하겠다는 플랜을 이야기한다. 이어 리더는 미자에게 “네가 싫다면 계획을 실행하지 않을 것”이라며 생각을 묻자 미자는 “난 싫다. 옥자를 데리고 바로 떠나겠다”고 했다. 문제는 통역가 케이가 “미자가 작전에 동의했다”고 정반대로 바꿔 거짓 통역을 하면서 불거진다. 미자 입장에선 배신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대화는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는데 케이가 결국 “내가 작전 중단이 걱정돼 거짓 통역했다”고 자백하자 리더는 케이를 때리면서 “통역은 신성한 거다. 니가 우리 명성에 먹칠을 했다”고 나무랐던 걸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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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서로 언어가 다르고 소통 방식이 달라 이해를 완전히 못하면 필연적으로 오해가 생기고 왜곡이 된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곧 인물들의 행위와 선택에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이 소통은 어떤 테마와 이어지는가. 바로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소통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살던 기택네 가족과 대저택에서 살던 동익네 가족이 서로 어떤 구도에 놓여 있었는지 뜯어 보는 작업 역시 테마와 연결된다. 또 ‘괴물’에서 정부가 괴생물체로 인해 신종 바이러스가 곳곳으로 퍼졌을지도 모른다면서 불안감을 조성했던 걸 떠올려 보자. 사실은 괴물이 문제였고 바이러스는 없었다. 정보의 차이가 발생한 셈이다. 한쪽에선 정보를 왜곡하거나 은폐하는데 그걸 모르는 다른 쪽에선 소통에 실패하니 자꾸만 부작용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개체들이 서로 소통에 시행착오를 겪게 될 때 관객은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 관객들은 그들의 눈빛이나 몸짓이나 감정 따위의 비언어적 표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더 집중해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즉, 극에 대한 몰입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 봉준호 영화에서 ‘소통’이라는 키워드는 극 중 장르적인 재미를 풍성하게 해줄 뿐 아니라 영화가 품고 있는 지향점이나 목적지로 가는 데 도움을 주는 가이드 역할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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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미키가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끌고 가다 보면 또 맞닥뜨리는 질문이 있다. 과연 미키는 관객과 어떻게 교류할까. 정답은 간단하다. ‘미키 17’이 선택한 형식에서 그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이 어떻게 시작했나. 어딘가에 쓰러져 있는 미키가 화면 가득 잡힌 채 누워 있다. 이때 중요한 건 미키가 내레이터로서 자신의 내면과 상황을 서술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봉준호가 이 영화에서 보이스 오버(화면에 나타나지 않는 화자의 목소리가 표현되는 방식)를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키 17’의 원작 소설인 ‘미키 7’의 도입부에서 미키 반스는 자신의 심리를 직접 일인칭으로 서술한다. 그렇다면 영화도 소설의 구조를 아무 생각 없이 빌려온 것이라고 봐야 할까.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미키 17’이 성장 영화라는 것. 이 영화는 미키 1에서 출발해 수없이 죽고 살아나는 평범한 복제품 인간이 미키 17과 미키 18이 마주하는 우연한 사건을 거쳐 고유한 존재인 미키 반스로 거듭나는 여정을 그려냈다. 시작점과 종착점이 정해진 성장 영화인 만큼 살아남은 그 존재가 수많은 복제품 사이에서 유일한 인간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야 한다. 그렇기에 영화 내내 미키가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끄집어내 고백하고 토해내는 방식은 그 자체로 미키의 성장이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미키가 직접 자신의 생각 및 감정을 관객과 나누고자 하니 관객 역시 그 여정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대신 자연스레 동참하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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