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계엄에 쑥밭 된 軍, 민가를 쑥밭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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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포천시 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한미 통합화력 실사격 훈련 중 KF-16 전투기 오폭 사고가 발생해 이동면 노곡리 일대 민가, 성당 등 8채가 부서지고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진은 처참히 부서진 민가 건물과 사고 조사를 하고 있는 군·경·소방 관계자들. 조주현기자

 

대한민국은 지금 국방부 장관이 없는 나라다. 지난해 12월10일 김용현 장관이 구속됐다. 12·3 계엄을 통한 내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다.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차관이 장관 대행이다. 실무 군의 핵심인 육군참모총장도 공석이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도 계엄 이후 수사와 청문에 끌려다녔다. 국방부로부터 2월25일 기소 휴직 명령을 받았다. 특전사령관 등 특수부대 지휘관 여러 명이 구속됐다. 군이 쑥밭이다.

 

이런 상황에서 듣도 보도 못한 초유의 사고가 터졌다. 포천시 이동면 한 마을이 비행기 폭격으로 쑥밭이 됐다. 어이없게도 폭탄을 투하한 비행기는 대한민국 공군기다. 한미 연합·합동 통합화력 훈련 중이던 KF-16 두 대다. 탑재했던 MK-82 폭탄 4개씩, 모두 8개를 투하했다. 건물·교량 파괴에 사용되는 폭탄으로 파괴력이 상당하다. 폭파구가 폭 8m, 깊이 2.4m에 달하고 살상 반경만도 축구장 1개에 이른다.

 

마을은 초토화됐다. 주택 기와지붕이 내려앉고, 나무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성당 건물과 주택, 비닐하우스가 파손됐다. 군인을 포함해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마을에는 폭발물 처리반(EOD)이 투입돼 조사를 벌였다. 모든 주민은 집을 떠나 안전지대로 이동했다. 공군 전투기에 의한 민간지대 오폭 사고는 유례가 없다. 2004년 F-5B 전투기가 폭탄을 오폭하는 사고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고에 대처하는 군의 일 처리도 이해하기 힘들다. 난데없는 폭탄 낙하에 지역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더욱이 피해 지역은 전시 공포가 상존하는 접경지대다. 경찰 등에서는 즉시 오발 사고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군은 100분 가까이 공식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다. 정확한 사고 원인 설명도 없었다. 조종사 좌표 실수를 밝힌 건 오후 늦게다. 그 동안 주민들은 원인도, 추가 위험도 모른 채 떨고 있었다.

 

처음 나왔던 발표의 내용도 어색하다. “비정상 투하 사고로 민간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송구하게 생각하며 부상자의 조속한 회복을 기원한다. 피해 배상 등 모든 필요한 조치를 적극 시행하겠다.” 일의 우선 순위를 모르나. 그 시각 마을의 공포는 여전했다. 그 상황에서 공군이 할 발표는 사고 원인과 추가 위험 여부다. 그런데 ‘회복 기원’을 말하고, ‘피해 배상’을 약속했다. 어차피 배상은 정부의 몫 아닌가.

 

안 그래도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는 군이다. 공연히 사고 책임을 침소봉대하려는 것 아니다. 어이없는 사고를 보는 국민의 우려를 전해 두려는 것이다. 하루 속히 기계처럼 돌아가던 군 행정의 정식을 되찾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 시급한 게 국방부 장관 임명이다. 휴전 국가에서 국방부 장관은 비워두는 자리가 아니다. 정부 수립 후 최장 공백은 5일(1961년)이었다. 그 자리가 3개월째 비어 있다.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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