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국 안양소방서 화재예방과장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임대 표지가 붙은 빈 상가를 보게 된다. 분명 희망찬 꿈을 품고 시작한 자영업이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숨통을 조이는 밧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음식점 화재 또한 그렇다. 우리가 모르는 이유로, 우리가 모르는 곳의 숨은 불씨가 화재로 연결되면서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삼키는 화마가 되기도 한다. 특히 주방의 후드와 덕트에 쌓인 기름 찌꺼기에 조리 기구의 열기로 시작되는 덕트 화재가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대형 화재로 확대돼 큰 피해를 남기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내 음식점에서 발생한 화재는 543건에 이른다. 이 중 덕트 화재가 86건(15.8%)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덕트 화재의 특징은 외부에서 물을 뿌려도 내부까지 물이 침투하기 쉽지 않고 내부 통로를 따라 화재가 건물 전체로 확산할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 지난해 12월 안양시 동안구 중식당 주방 화재, 올해 1월 성남시 분당구 음식점 주방 화재, 2월 안양시 동안구 뷔페식당 주방 화재가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음식점 덕트 화재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화재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음식점 주방은 고온의 환경과 조리용 기름의 사용으로 주방 곳곳에 기름 찌꺼기가 끼는데 특히 덕트 속에 쌓여 있는 기름때는 조리 중 튀는 불꽃에도 쉽게 화재로 이어진다.
이런 덕트 화재는 관심만 가진다면 예방할 수 있다. 먼저 설치 기준에 적합한 설비를 설치하자. 배기 덕트는 화재 예방법에 따라 0.5㎜ 이상의 아연도금강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내식성 불연재료로 설치해야 하며 주방 시설에는 기름을 제거할 수 있는 필터 장치를 필수적으로 갖춰 화재를 예방해야 함은 물론이고 식용유 등 기름 화재에 적응성이 있는 K급 소화기 비치와 화재 확산 방지를 위한 주방 자동소화장치를 설치해 화재에 대비해야 한다.
설비를 기준에 맞게 설치했다면 정기적인 점검과 청소가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3개월마다 소방국의 승인을 받은 청소업체에 점검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법제화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덕트 내부 기름 찌꺼기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덕트 내부 기름 찌꺼기가 약 5㎝ 두께로 쌓이면 발화점이 원래 기름과 큰 차이가 없다.
주방 덕트 화재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화재다. 정기적인 청소와 적절한 관리, 평소의 자발적인 주방 상태 점검과 안전 수칙 준수는 화재로부터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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