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52시간 유예 호소 ‘시대와 안 맞는 소리’ 반대 정책 계승, 친文 셈법인가
김동연 경기지사에는 ‘반도체 도지사’라는 별명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지난해 붙여줬다. 그도 그럴 게 2022년 취임 이후 그의 반도체 행보는 특별했다. 네덜란드까지 날아가 3조원대 수출 합의를 이뤄냈다. 반도체 클러스터 지원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런 의지가 집약된 것이 반도체 특별법 추진이다. 반도체 특구 조성, 팹리스 및 중견·중소기업 지원, 반도체 생태계 기금 조성 등이 전부 ‘김동연 구상’이다.
국민의힘(고동진案)과 민주당(김태년案)을 이끌어냈다. ‘반도체 도지사’는 이런 노력에 대한 별칭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산업이 몰려 있는 경기도다. 이런 경기도 수장에 주어진 별명이다. 흐뭇한 영예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헷갈리는 일이 있다. 정치로 번진 ‘주 52시간 예외’ 문제다. 사달은 17일 국회 소위에서 일어났다. 반도체 특별법 합의가 불발됐다. 핵심이 주 52시간 예외다. 여야 차이가 워낙 크다.
김 지사가 이 부분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유예 반대’다. 자신의 SNS에서 공개 표명했다. 표현이 거세다. “AI 기술 진보 시대에 노동 시간을 늘리는 것이 반도체 경쟁력 확보의 본질입니까. 시대를 잘못 읽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흘 뒤에는 ‘주 30시간 기업’을 찾아가 격려했다. 마침 이재명 대표가 주 52시간 유예를 긍정 검토한다던 시기였다. 언론은 일제히 ‘보란 듯이 이 대표와의 입장 차이를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맞다. 주 52시간제는 문재인 정부 유산이다. 노동친화적 이념을 실현한 정책이다. 대통령 되려는 김 지사의 언덕도 친문(親文)이다. 정책 승계를 위한 정치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런 선택이라면 평할 건 없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반도체 도지사’라고 하니 따져는 볼 일이다. ‘주 52시간 유예’가 현재 국민의힘 주장인 건 맞다. 하지만 그 출발은 반도체 업계다. 업계에서 정치권에 보낸 지원 요청이다.
업계 목소리를 되짚어 보자. 지난해 11월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발표다. -신속한 기술 개발과 생산력 확보가 시급하다. 반도체 산업 내 설계 기업, 제조 기업, 소부장 기업 등의 업무 특성상 획일화된 근로시간 규제에 묶여 있으면 안 된다. 생산 분야도 수출 변동에 따른 근로 유연성이 절실하다-. 노동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 앞에서 밝힌 호소다. 그날 핵심은 이거 하나였다. ‘52시간 예외 적용’ 외엔 기사에 없었다.
그간 현장에서 나온 증언도 추려 보자. -반도체 R&D는 신제품 개발을 위해 6개월~1년의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핵심 연구 인력은 대체 불가다. 최첨단 D램 개발이 근로시간 한도에 막혀 18개월이나 지연된 적도 있다. 대만 TSMC는 2023년 발열 문제를 두 달 만에 해결했지만 한국의 반도체 기업은 2022년 3월 발생한 발열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생산에서는 30% 납기 지연이 일상이 돼 버렸다-.
그제(18일) 아침, 삼성전자에 전화했다. ‘주52시간 유예 불발을 어찌 보는가’. “반도체산업협회로 물어봐 달라”며 말을 아낀다. 더는 안 물어봤다. 17일부터 ‘주 52시간 유예’는 정치 문제가 됐다. 업계는 다시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다.
달포 전, 그 삼성전자의 고위 임원들이 국회에 갔더랬다. 의원실을 돌며 문건 하나를 전달했다. 제목은 ‘반도체 특별법 내 근로시간 유연화 관련’이었고, 내용은 “전체 5%에 불과한 연구원들이 일할 수 있게 해 달라”였다. ‘반도체 본질’은 그들이 잘 안다. 그들이 호소한 ‘주 52시간 유예’다. 김동연 지사도 12일 삼성전자를 찾았다. “힘을 실어주러 왔다”고 했다. 힘을 실어주려면 소원부터 들어줘야 하는거 아닌가. 소원의 선택은 업계가 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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