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정치부 차장
요즘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가장 먼저, 자주 만나는 것 중 하나가 키오스크다. 우리말로 가장 유사한 걸 찾아보면 ‘무인 주문 기계’ 정도가 될 것 같다. 무인, 단어 자체에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는 이 기계는 이상하리만큼 사람을 위축시킨다. 멀쩡히 잘 보이던 단어가 안 보이기도 하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쓰는 게 익숙한 필자에게도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초조함을 준다.
이런 감정은 어르신들일수록 더할 것이다. 오죽하면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지 못해 햄버거 하나 사 먹지 못했다는 어르신의 사연이 온라인을 달궜을까.
이런 글을 볼 때면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님이 떠오른다. 식사 후면 티타임이 일상인 분들인데, 그렇지 않아도 블렌디드에 프라푸치노 같은 어려운 말들 속에서 무인 주문 기계까지 만나 초조함을 느끼다 발길을 돌릴까 하는 걱정이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이런 장면을 봤다. 어르신 네 분이 카페에 설치된 키오스크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초조해 하고 계셨고 점원들은 음료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그분들 바로 뒤에 선 한 학생이 “괜찮으시면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하며 싱긋 웃었다. 그제야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안도감 섞인 웃음이 번졌다.
상당한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줄을 선 이들 중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무인 기계에 인정이 피어난 것이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도 우리 앞에서 초조해할 어르신들이 단단하게 이 땅을 지켜 왔기에 새로운 문화라는 이름의 혜택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바라본다. “괜찮으시면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저도 아직 어려워요”라며 웃어줄 수 있는 인정이 모든 키오스크에서 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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