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원 세종사이버대 한국어학과 교수·한국어교육원장
돌아보면 10대와 20대에는 유독 한국 밖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 어느 옷가게에서 옷을 구매하고 공짜로 받은 아이비리그 달력이 필자에게는 그렇게 소중했다. 그 달력에는 네이비색 바탕에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풍경이 월별로 펼쳐져 있었다. 어느 달에는 초록색 담쟁이 넝쿨이 고풍스러운 빨간 벽돌의 건물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 클로즈업돼 있었는데 그 장면만으로도 막연한 위엄이 느껴졌다. 그때 그 달력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다짐 혹은 소원 같은 게 박혔던 것 같다. 언젠가는 나도 저곳에 가리라고. 물론 그것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나 자신이 그러한 다짐이나 소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잊고 한국에서 평범한 대학원생으로 살던 어느 날, 박사과정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미국의 한 대학에 펠로우십(일종의 교환연구원 장학)을 지원받게 됐다. 비행기삯만 지불하면 현지에서 생활비를 받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변 대학의 연구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지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미국 체류 기간에 거주할 수 있는 집 또한 이미 저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기에 나로서는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꿈꾸던 것이 현실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이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애틀랜타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까지도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만큼 불안감도 컸지만 기대감만 못했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출발한 미국 생활은 적어도 초반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내가 출근할 학교의 건물은 중학교 때의 그 아이비리그 대학 달력 속 건물과 거의 차이가 없었고 교직원들 또한 하나같이 친절했을 뿐 아니라 거주지의 이웃마저 갑작스럽게 이사온 이방인을 열린 마음으로 대해 줬다. 그런데 모든 일이 그렇듯이 우리 삶에는 늘 좋은 일만 있지는 않다. 나의 미국 생활에서 그것은, 정말이지 이것이 문화 이론서에서만 봤던 문화 적응의 허니문 단계임을 실감하며 미국 생활에 한껏 취해 있을 때쯤 자동차 사고처럼 다가왔다.
거주지 근처에는 마트가 없어 제대로 된 식자재를 사려면 30분쯤 걸어 큰 슈퍼마켓으로 가야 했는데 그날은 오랜만에 그곳으로 가는 날이라 이것저것 사다 보니 비닐봉투에 든 짐이 여러 개가 돼 버렸다. 참고로 미국은 워낙 땅 덩어리가 넓은 나라라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인구가 많아서인지 뉴욕 같은 대도시가 아니면 대중교통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필자가 거주한 애틀랜타 교외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슈퍼마켓 근처에서 버스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펠로우십 연구원 주제에 한번 타면 기본적으로 100달러는 족히 깨지는 택시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짐이 든 비닐 봉지 여러 개를 양 손목에 걸치고 두 손으로 잡고 하면서 낑낑대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도로를 가로지르던 차량 한 대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안에 타고 있던 청년들이 창문을 내리려고 했다. 내심 내게 도움을 주려고 그러나 싶었지만 정작 돌아온 것은 할리우드 영화로만 봤을 뿐 내 생애 결코 들어본 적도 없는 욕설과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망언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그렇게 내게 조롱 섞인 차별의 말만 남기고 총기 사건 등의 물리적 폭력은 없이 순식간에 떠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들은 나를 도대체 얼마나 안다고 저런 저주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퍼부을까. 자신들이 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그리고 본인들이 방금 내게 한 것이 범죄에 해당하는 폭력인 것은 인지하고 있을까 등등의 여러 생각이 오갔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 끝에는 내 안에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분노만 남아 있음을 봤다. 그것은 내가 조금만 덜 도덕적이었다면 살기로 이어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 차별과 폭력은 누군가의 일상과 행복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그 사람이 다시는 그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면 또 다른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으며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그 광기의 사슬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되풀이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그 옛날 나의 미국 생활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지금이라도 우리 각자의 언동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성찰해야만 또 다른 차별과 폭력의 발아 순간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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