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닿는 화이트샌즈비치의 촉감은 비단결처럼 보드랍다. 잔잔한 파도는 쉬지 않고 밀려들어 발자국을 지운다. 포근한 카리브의 초저녁 바람은 볼을 간질이며 스친다. 비릿한 바다 내음은 어디 갔는지 카리브 향이 코끝을 적신다. 문득 어린아이처럼 바다에 뛰어들어 물장구를 치고 싶은 동심의 세계에 빠진다. 초승달은 구름 사이로 얼굴을 삐죽 내밀고, 에메랄드빛 바다에 비친 조각배는 파도에 갈 길을 잃고 일렁인다.
느릿느릿 해변을 걷다 보니 어느새 검붉은 저녁노을은 사라지고 어둠이 밀려온다. 밤하늘엔 새털처럼 옅은 구름이 흐르고 수많은 별은 그물에 걸려 술래잡기하며 반짝인다. 고갱과 싸운 후 귀를 자르고 생레미 요양원에서 밤하늘의 무한함을 그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떠오르는 칸쿤의 아름다운 밤이다.
35일간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나를 잊고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중미 멕시코에서 찬란한 고대 문명과 삶을 둘러봤다. 인디오의 찬란한 토착 문명을 가진 멕시코는 에스파냐 식민 통치를 통해 서구 문명이 유입돼 혼합 문명이 형성됐다. 현재는 미국에 대한 경계심이 있어도 미국과 유사한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멕시코 사람들은 친절하고 낙천적이면서도 배타적이다. 하지만 동양인에 대한 감정은 고대 조상이 동양인이라는 이유에서 비교적 괜찮은 편이라 여행 중 불편함은 없었다.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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