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34가지 범죄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 성추문 입막음, 기밀문서 유출, 대선 뒤집기 시도.... 평결은 배심원의 최종 판단이다. 재판부의 판결은 아직 선고되지 않았다. 그 시점에 대선이 치러졌고 대통령이 됐다. 이재명 대표도 여러 가지 재판을 받고 있다. 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대장동·백현동 배임, 대북송금.... 이걸 두고 ‘이재명=트럼프’라는 주장이 나온다. ‘사법 탄압을 이겨 낸 굴기’로 보는 듯하다. 이 판단에 동의할 생각 전혀 없다.
사법 리스크가 트럼프를 당선시킨 게 아니다. 34가지 범죄는 분명히 대선의 악재였다. 그 악재를 덮어 준 게 있었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다듬어진 구호지만 내용은 투박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국익 챙기기다. 2016년 처음 대통령이 됐다. 취임하자마자 나토를 협박했다. 한국과 일본에도 방위비 분담 인상을 압박했다. 실적이 첫해부터 나왔다. ‘2017년 일자리 210만개 창출, 실업률 4.1% 감소’. 이게 2024년 당선의 진짜 이유다.
이재명 대표가 닮을 것도 분명하지 않나. 사법리스크 극복 트럼프가 아니라 세계 돈 긁어 모으는 트럼프다.
빗나간 칼럼이 하나 있다. ‘이재명표 현금 정치, 또 나올 때 됐다’. 1월22일자 김종구 칼럼이다. -이재명 경제 정책의 핵심은 현금 지원이다. 성남시장·경기지사 때도 그게 무기였다. 탄핵 정국에서 또 한 번 등장할 것이다. 걱정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곧바로 민생지원금 13조원이 튀어나왔다. 맞나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대표가 말을 바꿨다. “민생회복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총선부터 부등켜안고 있던 현금 정치 공약 철회다.
당내 기본사회위원회 위원장직도 내놨다. 기본소득은 이재명식 현금 정치의 통칭이다. 이를 상징하는 기구가 기본사회위원회다. 거기서 손을 떼겠다는 발표였다. 연금개혁에도 달라진 목소리를 냈다. “일부라도 시작하자”고 했다.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이다. 국민에게 돈을 더 걷자는 방향이다. 돈을 주자는 것이 이재명 정치였다. 그런 그가 ‘더 걷자’며 재촉했다. 언론이 이렇게 썼다. 이재명 대표 우클릭.
표를 위한 보여주기식 정치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일단 평가하고 갈까 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세계는 미국이 움직인다. 이 미국 중심을 극대화시킨 게 트럼피즘이다. 불법 체류자에게 수갑을 채워 비행기에 태워 쫓았다. 그 자리에 자국민을 취직시킨다고 한다. 25% 관세폭탄을 터뜨렸다. 국경 이웃 캐나다·멕시코부터 초토화시켰다. 반도체, 자동차, 방위비, 북핵 딜.... 우리를 향할 가혹한 비수다. 세계의 시대정신은 이렇게 결정됐다. 믿을 나라 없는 무한 경쟁, 먹고 먹히는 적자생존.... 빚 내서 현금 뿌릴 여유가 어딨나.
우리에게도 트럼프가 필요하다. 장점만 제대로 닮은 트럼프여야 한다. 범죄로 재판 받는 트럼프가 아니라 세계의 돈을 끌어 모을 트럼프다. 우클릭이 줘야 할 것도 이런 믿음이다. 조건 붙인 13조원 포기로는 믿음 줄 수 없다. 조건 안 되면 다시 하겠다로 들린다. 13조원의 완전한 포기여야 한다. 본인만 손 뗀 기본사회위원회로는 믿음 줄 수 없다. 다른 사람 앉혀서 계속하겠다로 들린다. 기본사회위원회의 완전한 폐지여야 한다. 그땐 믿어 보겠다.
2010년 얘기로 끝내자. 어쩌면 이 대표 자신도 잊고 있을지 모른다. 성남시장이던 그를 전국에 등장시켰던 ‘첫 사건’이다.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 전임자의 방만 경영에 칼을 빼들었다. 호화청사 시장실에서 나왔다. 모두가 잘하는 행정이라고 했다. 전국 시·군에 예산 절감을 알리는 효시였다. 지난 1일 그가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했다. “민주당의 핵심 가치는 실용주의다.” 돌아보면 그의 가장 실용주의적 모습은 그 모라토리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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