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원작이 무대와 영상 콘텐츠로 탄생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시작점인 무대 뮤지컬과 뮤지컬 영화의 관계는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라고 말한다.
배우 중심 vs 연출 중심의 예술
지난해 11월 뮤지컬 영화 ‘위키드’가 개봉했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고 국내의 크고 작은 이슈로 흥행은 주춤했지만 뮤지컬과 영화를 좋아하는 대중에게 사랑을 받으며 두 장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무대와 영상의 교류는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50년대에는 뮤지컬 작품이 무대를 거쳐 영화화되는 수순을 밟던, 뮤지컬 영화 전성시대였다. 당시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무대용 뮤지컬이 대중에게 큰 인기를 누리자 이를 영화화하는 데 적극 나선다. 대중에게 친숙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메리 포핀스’,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이 세계 문화시장에서 사랑받게 된 배경이다.
원종원 교수는 “무대는 하루에 한 번, 그것도 공연장을 직접 찾아오는 관객만 볼 수 있지만 영화로 기록하면 인건비 없이 세계 곳곳에서 동시상영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며 “소위 돈벌이가 되는 문화산업이었던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는 뮤지컬 영화의 느린 전개는 점차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았고 그로 인해 인기가 다소 주춤해진다. 그 해결책으로 2000년대에 들어서며 ‘원스’, ‘라라랜드’ 등 원작 없이 영상을 위한 뮤지컬 영화가 등장했다.
또 공연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도와 볼거리, 영화만의 연출을 담은 ‘시카고’, ‘맘마미아’, ‘레미제라블’ 등 뮤지컬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 ‘백 투더 퓨처’, ‘킹콩’, ‘비틀주스’, ‘반지의 제왕’ 등 영화를 무대용 뮤지컬로 꾸미는 ‘무비컬’의 등장도 무대와 영상에 활력을 주는 요인이 된다.
원 교수는 “1950년대와 2000년대 제작되는 무대 원작이 있는 뮤지컬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대와 영상의 차별화를 극대화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무대를 본 사람도 영화의 파격이 궁금해 영화관을 찾고, 뮤지컬 영화를 본 사람은 원래 무대의 연출이 궁금해 공연장을 찾게 만드는 마케팅 전략이라는 것. 원 교수는 그 대표적인 예로 ‘시카고’를 꼽았다.
“‘시카고’가 뮤지컬 영화로 제작됐을 때 많은 사람이 1만원이면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누가 20만원을 내고 공연장을 찾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오히려 뮤지컬과 뮤지컬 영화 모두 관객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개봉한 ‘위키드’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영화’가 카메라의 샷을 통해 신(scene)과 시퀀스를 만들고 이야기를 구현하는 ‘연출 중심의 예술 장르’라면 ‘무대’는 열린 공간에서 배우의 동선과 움직임, 전체적인 구도의 전개를 통해 스토리를 완성해내는 ‘배우 중심의 예술 장르’다.
원 교수는 “이런 차이점이 같은 이야기라도 다른 감상을 느끼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라며 “뮤지컬 영화 ‘위키드’는 이런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원소스’의 유명세보다 ‘멀티유즈’의 아이디어가 우선
원 교수는 뮤지컬 원작을 영화화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보였다. 단, 앞서 말한 것과 같이 1950년대 식의 단순한 영화화·영상화로는 대중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고 봤다.
원 교수는 “어떻게 무대와 차별화되는 실험과 파격을 담아낼 것인가가 관건”이라며 “같은 이야기의 무대 뮤지컬과 뮤지컬 영화는 다른 이미지, 차별화된 묘미를 담아냈을 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뮤지컬과 뮤지컬 영화는 서로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와 같은 관계”라며 “이것이 ‘원소스 멀티유즈(OSMU)’의 기본 방향성이자 오늘날 뮤지컬 영화를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산업계에서 ‘OSMU’는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소설이 영화로, 영화가 뮤지컬로, 뮤지컬이 뮤지컬 영화가 되는 활용법은 하나의 콘텐츠로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콘텐츠 시장의 핵심 프로젝트로 자리 잡고 있다.
OSMU에 있어 선구적인 기업인 디즈니는 초창기부터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피노키오’ 등 자신들의 애니메이션에 뮤지컬 기법을 활용해 제작하는 방식을 즐겼다.
원 교수는 “디즈니 최초의 실사 영화였던 ‘메리 포핀스’도 무대 뮤지컬이 아닌 뮤지컬 영화가 시발점이었다”며 “디즈니는 콘텐츠의 다양한 변화를 통한 수요 창출에 일찌감치 관심이 많았던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막이 오른 뮤지컬 ‘알라딘’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해 무대용 뮤지컬로, 무대용 뮤지컬을 다시 실사 뮤지컬 영화로 만든 대표적인 OSMU 작품이다. 앞서 ‘라이언킹’이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해 무대용 뮤지컬이 됐다가 다시 실사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진 것과 엇비슷한 구조다.
원 교수는 “무대 예술은 영상이나 애니메이션만큼 빠르고 현란하게 구성하기 힘들다”며 “무대만의 특징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익숙하지만 새로운 매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캐릭터들을 무대에 어울리는 형식으로 변화시키거나 특수효과를 활용해 마술쇼를 보는 듯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것이 무대 예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는 것. 단순히 장르가 바뀌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장르에 걸맞게 새로운 볼거리, 즐길거리, 매력을 만드는 것이 OSMU의 포인트다.
그런 면에서 국내 창작 뮤지컬이었던 ‘김종욱 찾기’, ‘영웅’ 등의 영화화는 OSMU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원 교수는 “OSMU의 주요 전략은 원소스(One Source)의 유명세나 대중성에 기대는 것보다 멀티유즈(Multu Use)의 파격과 실험,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디어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 콘텐츠들이 이런 부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충분히 매력을 발산하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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