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대를 만날 때처럼 설렘 속에 건너온 한 해가 고삐를 풀고 달린다. 일월도 벌써 어둡다.
설을 앞둔지라 부모님의 부재에 더욱 공허하다. 한 해의 전시 계획과 해야 할 일들이 빼곡한 행간을 헤집는다.
나의 어반스케치 교실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분주히 신작로를 달린다. 출발선은 같지만 관심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빨리 혹은 천천히 적응하기도 하지만 한결같이 잘하려는 의지가 엄숙하다. 나도 그렇다. 삶은 견뎌내는 것. 미켈란젤로의 등쌀이 버거웠던 다빈치의 고뇌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한 부분이었다.
나의 교실에 젊은 중국 여성 한 분이 들어왔다. 한국인 남편을 둔 이린님이다. 한국말과 문화를 잘 터득했다. 그와 중국말로 소통하는 남자 한 분이 있다. 현역 시절 삼성의 중국 주재원으로 근무했다는 김동석님이다.
처음 교실에 왔을 땐 처녀 넓적다리 본 부처님 제자처럼 과묵했다.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사라지고 이웃과 도무지 교섭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한 분기를 넘겼다.
그런데 이 수줍던(?) 경상도 남자의 태도가 일시에 바뀌었다. 밥도 같이 먹고, 커피도 같이 마시고, 가끔 술 한잔도 응전한다. 사회생활의 결격사항이 전혀 없는 게 이상하다.
불문율의 세월은 인간이 제도권에서 이탈하는 걸 무시로 방관하고 있다. 그림까지 잘 그리니 말이다.
나혜석 생가터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깃든 행궁동 골목길을 그가 은근히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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