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숙 ㈔한국관광개발연구원 실장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너희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어라’는 메시지를 전한 키팅 선생님을 만난 후 필자는 새해를 시작할 때, 새로운 다짐이 필요할 때, 예기치 못한 큰 사건을 마주할 때 늘 이 대사를 떠올리곤 한다. ‘카르페 디엠’, 이 말은 자주 ‘메멘토 모리(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경구와 짝을 이뤄 함께 사용된다.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그렇기에 주어진 시간을 더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서양에서는 죽은 자들의 공간인 묘지를 살아 있는 자들의 일상적인 공간 안에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교회나 성당, 공원과 함께 조성된 묘지공원 자체가 여행의 목적지가 된 사례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작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단체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부과한다고 해 논란이 됐던 빈 중앙묘지공원이 대표적인 사례로 1894년 조성된 이 묘지공원은 음악의 도시 빈을 있게 한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등 위대한 음악가들이 묻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화려한 조각상과 저마다 개성 있는 묘비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마치 잘 조성된 조각공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곳에 잠들어 있는 음악가 중 상당수가 생전 감당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낸 스토리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겪는 삶의 고통도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프랑스에도 빈 중앙묘지공원만큼 유명한 페르 라세즈라 불리는 묘지공원이 있다. 파리 시민과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파리의 명소인 이곳은 오스카 와일드, 발 자크, 짐 모리슨, 에디트 피아트, 쇼팽, 모딜리아니, 마리아 칼라스 등을 추모하는 이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유명인의 묘지가 아니어도 이곳은 영원을 살 것처럼 아등바등 사는 현대인들이 ‘죽음’을 기억하고 일상의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사색의 공간이자 교육의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들이 있다. 서울 마포 양화진에는 개화기 우리나라에 의료, 교육, 복음을 들고 선교를 왔던 이들이 묻힌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있어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와 함께 낯선 이방의 땅에서 ‘특별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삶을 마주할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사제들과 무명 신자들을 기념하는 절두산순교성지, 서소문성지 역사공원 등은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은 신자들의 삶을 통해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서소문성지 역사공원은 ‘종교’가 없는 이들도 공간이 주는 ‘위로’와 ‘치유’를 경험할 수 있어 더 많은 사람이 방문했으면 하는 곳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알지만 의외로 가본 사람은 적은 국립서울현충원이나 6·25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이 안장된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 위에 우리가 서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공간이자 지금 우리가 누리는 ‘안전하고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준 그들의 죽음 앞에 살아있는 자들의 의무와 책임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2025년이 시작된 지 어느새 한 달이 돼 간다. 희망찬 새해를 시작했다고 하기엔 국내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로 인해 많은 사람이 우울증과 무기력을 토로하고 있는 요즘 주변을 잠시 둘러보면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 혹은 이야기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부디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더 사랑하고 충실히 살아낼 수 있기를 응원한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