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대평원 가로지르니… 끝없는 침엽수림 수백 킬로미터 ‘토탄 불 연기’ 하루 17시간 낮 지속돼…
■ 야성미 넘치는 시베리아 대평원
북쪽 도시 ‘스코보로디노’로 올라 갈수록 활엽수인 자작나무는 적어지고 소나무, 가문비나무 등 침엽수림이 많아진다. 목적지인 북위 54도 스코보로디노로 향하고 있다. 북극해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하늘은 회색 구름이 많고 수시로 이슬비가 내린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고위도 지방으로 올라가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침엽수림을 통과하며 하루 종일 비슷한 풍경을 계속 보면서 운전하고 있다.
시베리아 대평원의 경이로운 야성미, 압도적인 원시적 풍경이 우리를 자연인으로 만든다. “자연은 모든 아름다움의 으뜸이며 진실한 모성적 원천이다.” 독일의 헤르만 헤세는 자연을 이같이 예찬했다.
시베리아 대평원을 방랑하는 나그네처럼 달려가며 박목월 시인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방랑과 청춘과 사랑도 때가 있고 끝이 있습니다. 나의 나그네 길은 어디로 가나요?”
건너편 차선에서 마주 오는 러시아 트럭 기사들이 앞쪽에 교통경찰이 단속하고 있다고 서치라이트를 한두 번 깜박여 주며 달려간다. 선두 차를 운전하는 일행이 경찰과 눈을 맞추지 말라고 무전기로 연락해 준다. 러시아 경찰은 생트집 잡는 데 악명이 높다고 조언한다.
중간에 우리에게 반갑다고 인사하는 러시아인을 가끔 만난다. 점심에 휴게소에서 만난 트럭 기사는 한국 친구와 과거 일주일 동안 함께 오토바이 여행을 했다며 이름이 김은호라는 사람의 사진을 휴대폰에서 꺼내 보여준다.
도로 옆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있을 때 어떤 러시아인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한국에서 3년 동안 일했다며 한국 사람 만나 반갑다고 한다. 헤어질 때 한국말로 ‘잘 가세요’ 인사를 한다.
작은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을 때마다 북새통이다. 일시에 8명이 주문을 하면 러시아 식당 종업원이 돈 계산을 못한다. 시베리아 휴게소 식당 여주인은 대부분 무뚝뚝하고 인상이 굳어 있다. 평생 시베리아 숲속에서 살아가는 단순한 삶일 것이다.
러시아어 통역을 위해 출발 전에 러시아어를 잘하는 대학생 윤군을 알바생으로 채용해 동행하고 있다. 동해항에서 출발해 목적지 이스탄불, 그리고 서울까지 전 구간을 함께한다.
윤군이 우리 일행의 식사 메뉴를 취합해 주문하고 식대를 루블화로 계산하는 절차가 매번 복잡하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한 제재로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되기 때문에 항상 현금 지불이 번거롭다.
휴게소에서 파는 소고기, 닭고기, 러시아 빵, 각종 러시아 음식은 이미 만들어져 진열돼 있다. 음식을 주문하면 종업원이 음식 한 개씩 전기레인지에 2, 3분 데워 팔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영어가 전혀 안 통하기 때문에 통역을 맡은 윤군은 식사 때가 가장 바쁘다. 우리가 지나갈 러시아, 몽골,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조지아 등 옛 소련권 국가는 러시아어가 통용되기 때문에 알바생으로 러시아어과 대학생을 두 달 고용해 함께 여행하고 있다.
시베리아 이동 중 가장 곤욕스러운 일은 불결한 화장실이다. 휴게실 부속 화장실은 20루블( 300원), 30루블, 40루블(원화 600원) 요금을 받는다. 쪼그리고 앉아 사용하는 재래식 변기는 우리의 40년 전 변기라 너무 불편하다. 화장실 물이 잘 안 나와 매우 지저분하고 휴지도 없어 화장실 갈 때마다 절차가 복잡하다.
외국 관광객이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을 칭찬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남자들은 도로변 산속에 적당히 해결할 수 있는데 아내는 휴게소 갈 때마다 매번 울상이다. 화장실에 돈 받는 사람은 대개 나이 든 할머니다. 화장실이 시베리아 노인 일자리 창출의 하나구나 생각하며 웃고 만다.
좋은 점은 나무와 목재 펄프가 많은 지역이라 식당이나 휴게소의 종이컵 인심은 후하다고 아내가 말해 모두 웃는다.
■ 불타는 시베리아 산림
점심 식사 후 스코보로디노 200㎞ 못 미쳐 간헐적으로 산불 연기가 대평원을 덮고 있다.
땅속에서 발생한 ‘토탄 불’ 때문에 나무가 말라 죽고 토탄에서 나오는 유독한 연기와 냄새가 숲을 가득 채우고 있다. 토탄은 석탄 중에서 역사가 가장 짧은 것으로 사람들이 연료로 사용하지 않는 초기 석탄의 일종이다.
유독성 냄새와 짙은 연기 때문에 야생 짐승이나 새들도 살기 어려울 것 같다.
토탄 불은 땅속의 광맥을 옮겨 다니며 불이 나기 때문에 진화가 안 된다고 한다.
겨울철 눈이 내리면 잠시 꺼진다고 한다. 눈이 쌓인 겨울은 땅속에 불씨로 남아 있다가 다음 해 여름철 건조해 되면 다시 불꽃이 되살아나 숲은 태운다고 한다. 대자연의 섭리에 인간의 능력은 제한적이다.
짙은 연기가 자욱해 하늘을 볼 수도 없다. 침묵의 원시림에 지옥의 불이 난 것 같다.
이러한 화재는 오래된 자연 현상인데 지구온난화 현상이 산불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연기 자욱한 불길 옆 도로를 지나가면서 자동차에 불이 옮을까 걱정된다.
이러한 불길이 수백㎞ 이어지고 있다. 화물차들은 토탄 불 연기에 익숙한 듯 잘도 달린다.
스코보로디노로 가는 중간에 북극해 도시 ‘야쿠츠크’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야쿠츠크는 이곳에서 800㎞ 떨어진 북극해 툰드라 지역의 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라고 한다. 유전 개발로 만들어진 도시다. 겨울철 영하 50도 이하가 돼야 학교는 휴업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영하 50도 추위를 기다린다고 한다. 툰드라 지대의 타이가 등 원시 생태계를 꼭 보고 싶은데 일정이 허락하지 않음을 아쉽게 생각하며 북쪽으로 달린다.
겨울철 ‘혹독한 추위’를 체험하러 관광객이 찾아오는 도시라고 한다.
환경이 변하면 사람의 성격도 변함을 경험하게 된다. 후미에 따라가는 우리는 선두 차에 목적지가 얼마 남았는지 무전기로 물어본다. 앞에서 무전기로 150㎞ 남았다고 말한다. 두세 시간 가야 할 먼 거리임에도 아내는 ‘얼마 안 남았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얼마 후 70㎞ 남았다고 무전기 연락이 온다. 아내는 ‘이제는 남은 거리가 정말 껌이네’라고 말해 웃으며 운전한다. 인간의 상황 적응력은 뛰어나다.
광활한 대지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본인도 모르게 대륙성 만만디, 대륙성 기질로 변하고 있다.
이곳에 우리도 몇 달만 살면 성격이 대륙성 기질로 변할 것 같다.
■ 스코보로디노 도착
‘한대기후’ 지역이라 주변에 농경지도 없다. 경작 한계선을 넘어선 것 같다. 토탄 연기 자욱한 시베리아 평원을 달리며 낭만적인 겨울 설원을 상상해 본다. 바이칼호 설경을 보기 위해 방문했던 4년 전 시베리아 눈 덮인 자작나무 숲길이 생각난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낭만적 설원 풍경을 상상하며 자욱한 연기 속을 지나가고 있다. 이곳은 봄과 가을은 매우 짧고 긴 겨울과 여름 두 계절만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 주민들의 생업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과거 몽골족은 수렵으로 야생 동물을 잡아 모피는 팔고 고기는 식용했다. 현재는 목재 산업 등 임업이 주된 업종일 것이다.
7월 중순 북위 54도인 이곳 낮 시간이 하루 17시간 준백야 지대다. 인구 1만명의 작은 도시다. 손님이 적으니 한곳에서 식당, 휴게소, 잡화점, 여관, 주유소를 함께 운영한다.
숙소의 침대 쿠션이 엉망이라 누우면 몸이 쑥 들어간다. 뚱뚱한 러시아 운전사들이 사용하는 아주 오래된 침대인 것 같다. 침대 시트도 언제 세탁했는지 지저분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따뜻한 목욕물도 잘 안 나오는 낙후된 여관이다.
여관방에 비치된 물 끓이는 커피포트도 언제 세척했는지 알 수 없다. 야외 저녁 날씨는 쌀쌀해 이불이 필요하다. 토탄 타는 냄새가 이곳 숙소에도 심하다. 오늘 저녁도 피곤을 이기기 위해 반주로 러시아 보드카를 몇 잔 마신다.
서울 살 때 안락한 좋은 침대에서 잠을 잘 때도 밤중에 한두 번 깨어 뒤척이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제는 나쁜 침대에서도 피곤함에 잠을 잘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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