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작가의 ‘너의 유토피아(Your Utopia)’가 지난 10일(현지 시각) 세계 3대 SF 문학상인 ‘필립 K 딕상’ 후보작에 올랐다. 한국 작가가 유명 SF 문학상 후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F, ‘공상과학’ 장르는 낯설고 어색하다는 인식 속 국내에선 불모지로 통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 들어 가장 주목 받는 장르 중 하나로 꼽히더니 지난 10년 새 5.5배나 성장(인터넷 서점 ‘알라딘’ 판매 통계)하며 자리잡고 있다.
기술의 진보가 가져올 미래를 예측한 SF소설의 상상력은 로봇과의 공존에서 야기될 윤리와 도덕 문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비생명체와의 감정 교류 등 곧 인류가 당면할 여러 철학 사유와 고민을 엿보게 한다. SF장르가 지금 시대 주목받는 이유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 등 해외 독자까지 사로잡은 국내 작가들의 대표작 세 권을 소개한다.
■ 정보라 ‘너의 유토피아’
지난해 1월 미국에서 번역 출간된 정보라 작가의 ‘너의 유토피아’는 15일 한국어 개정판이 출간된 데 앞서 한국어로 쓰인 작품이 해외 시장에서 이미 인정받았다는 데 더욱 의미가 있다. 정 작가는 앞서 소설집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2023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각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독일 라이프치히도서전상을 받기도 했다.
‘너의 유토피아’는 2021년 출간된 ‘그녀를 만나다’의 개정판으로 총 8편의 단편을 통해 상실을 애도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표제작 ‘너의 유토피아’는 전염병으로 인해 인류가 떠나버린 황량한 행성에서 고장 난 휴머노이드를 태우고 배회하는 스마트카의 이야기를 다룬다. 인간을 꼭 닮은 의료용 휴머노이드 ‘314’는 “너의 유토피아는 어때?”라고 질문한다. 망가진 세계에서도 더 나은 곳을 향한 간절함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아프게 다가온다.
■ 천선란 ‘천 개의 파랑’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에 빛나는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은 소설을 넘어서 연극과 뮤지컬 등 타 장르까지 활발히 확대되며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작품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우연히 인지능력 칩이 들어간 휴머노이드 기수(騎手) ‘콜리’가 연골이 무너지는 말 ‘투데이’를 위해 스스로 낙마한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며 동물과 로봇, 인간이 서로 다른 종을 넘나드는 연대를 그리고 있다.
인지와 학습 능력을 갖춘 기수인 로봇 ‘콜리’가 최고의 속도를 달리기 위해 고통스러워하는 말을 위해 낙마하고, 이러한 말을 살리고 싶어하는 인간 ‘은혜’가 펼치는 사랑과 책임, 희생이란 가치는 깊은 울림을 준다.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난해 2019년 6월 출간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총 7편의 단편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끊임없이 반문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완벽한’ 유전자의 선택이 가능해진 가까운 미래가 배경이다. 그곳에선 완벽함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경계 밖으로 밀려난다. 그런가 하면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가족과 생이별한 할머니 과학자가 아득한 우주에서 재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다룬다.
포스텍 대학원 출신의 과학도인 작가 김초엽은 작품을 통해 2019년 ‘제43회 오늘의 작가상’이라는 영예를 안았고, 2023년에는 비중화권 작가 최초로 중국의 양대 SF문학상을 모두 받는 쾌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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