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원도심, 문화예술로 유혹?

조용경 작곡가·공연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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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송구영신이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다. 어두운 밤거리에는 응원봉의 불빛이 한데 모이고 안타까운 참사로 수많은 이름들이 밤하늘 영롱한 별빛이 됐다. 전 국민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으려니와 뒤따르는 서민들의 현실적인 생활고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쇠퇴한 원도심 지역의 시장 상인, 자영업자들에게는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추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아픔을 딛고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뤄내면서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됐다. 그 뒤로 원도심의 쇠퇴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신도시가 조성돼 인구가 분산되면서 원도심은 쇠퇴하고 도시 격차는 점차 벌어진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상권이 무너지면서 과거에 중심이었던 원도심은 그 기능을 잃고 쇠퇴한 지역이 됐다.

 

우리 사회는 원도심의 활성화를 위해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고 거리에 문화예술을 접목하는 등 여러 방안을 시도해 왔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만 해도 꽤나 여러 곳의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이러한 공간들도 역시 시민과 문화예술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취지와는 다르게 시민들에게 큰 공감을 얻지 못함에 따라 활용되지 않고 또 하나의 유휴공간이 돼버린 곳도 더러 있어 아쉬운 마음이 크다.

 

다른 예도 있다. 어느 시장 귀퉁이에서 연극 공연이 열렸다. 허름한 곳에서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이 공연은 주변 상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무대의 막을 내렸다. 눈물을 흘리는 상인들도 있었다. 원도심에도 문화와 예술에 대한 수요가 있음을 보여준 예시가 됐다. 이 사례는 거리 조성 사업에도 영향을 미쳐 문화의 거리가 만들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간 복합문화공간을 우선적으로 만들면서 또 다른 유휴공간이 돼버리기도 한 몇 사례와는 달리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예술 콘텐츠가 문화거리 조성사업으로 확장된 일들은 원도심도 문화예술로 인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단,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공감을 얻고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한 성공 요인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올해에도 여러 지자체에서 문화예술을 접목해 원도심 지역을 활성화하거나 원도심의 빈 건물을 모집해 콘텐츠 창·제작기지로 조성하려는 계획을 언론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공간을 먼저 구성하고 그에 맞춰 콘텐츠를 모집하는 모양새다. 이미 정형적으로 지어진 건물에 창의적인 문화예술 콘텐츠를 끼워 맞추는 형국이니 일의 순서가 잘못된 것 아닌가.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콘텐츠’와 ‘공간’이 함께 기획될 때 문화예술과 원도심은 더 효과적으로 상호작용 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복합문화공간을 설계하기 이전에 원도심의 구성원, 문화예술기획자, 지역전문가가 함께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특색을 반영해 이 공간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공간을 활용하는 사람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설계는 공간의 존재 의미를 퇴색시키며 자칫 새롭게 태어날 공간을 미래의 유휴공간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무형의 창의이며 문화는 자생적 흐름이다. 그리고 지역은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다. 이러한 지역의 문화예술을 원도심의 재생과 접목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본질적인 특성부터 이해하고 그것을 잘 살려내야 한다. 공간이라는 유형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콘텐츠 기획이라는 무형의 결과물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지역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문화예술 콘텐츠가 기획되고 그것과 어울리는 공간이 존재할 때 원도심이 가진 특유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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