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없는 마음의 감옥, 스스로 가둬버린 청춘 [2025 신년특집]

청년 고립은 이미 심각한 문제다. 경기도에는 고립 청년들이 많고, 세상 밖으로 나온 이들도 많다. 경기일보는 함께하는 힘을 믿는 청년들을 만나 ‘나보다 우리’의 의미를 되새겨 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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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는 혼자가 되지 않을 거예요

화성특례시에 사는 박세빈씨(26)는 최근 4년간의 은둔 생활을 정리하고 세상에 나왔다. 박씨는 지난 2020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당시 ‘진상 손님들’ 때문에 불안 장애가 생겼다. 사람이 무서워 방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숏폼’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박씨는 인터넷에서 본 고립·은둔 청년 지원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박씨는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사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다. 박씨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며 혼자 지낼 땐 몰랐던 재미를 알게 됐다. 앞으론 혼자가 되지 않겠다”며 웃어 보였다.

 

#2. 함께할 때 나다울 수 있어요

안양시에 사는 신수현씨(가명·29) 역시 집안에서만 5년을 보냈다. 취업에 번번이 실패한 후 느꼈던 우울함을 견디다 못해 내린 선택이었다. 그는 냉동식품과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자신을 고립시켰다. 은둔할수록 우울감이 심해지는 악순환을 겪던 중, 신씨는 고립·은둔 청년을 발굴하는 한 단체의 도움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단체의 지원으로 여러 활동에 참여한 신씨는 “혼자보다 함께일 때 우울증을 걷어내고 나다울 수 있었다. 앞으로는 숨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건강한 공동체’가 ‘고립의 방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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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세상이 단절 심화 불러

 

사회 단절이 가속화되면서 고립되는 도민 인구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기복지재단이 발표한 ‘2024 경기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내 고립 도민 인구는 2019년 5.3%, 2021년 6.3%, 2023년 6.8%로 매년 상승세를 보였다.

 

이는 전국 비율(같은 기간 3.3% → 5.4%)과 비교해도 높은 수치로, 도내 고립되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홍선미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기도에는 청년 인구가 전국에 비해 많고 소외 계층의 청년들도 많은 편”이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홍 교수는 “경기도에서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지원책을 늘리고는 있으나 이에 대한 홍보가 많이 부족하다보니 청년과 도민들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고, 지원책에 대한 접근성과 이용률도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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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청년들은 몇 년씩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은둔 기간은 1년 이상~3년 미만인 경우가 38.9%로 가장 많았고, 이는 전국 수치(31.5%)와 비교하면 훨씬 높다.

 

고립·은둔의 원인은 핵가족화와 미디어 발달로 은둔 여건이 형성됐다는 점이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률이 늘어나며 대다수 개인이 방에서 혼자 미디어에 접속하게 된 점도 은둔 여건 형성에 기여했다”며 원인을 분석했다.

 

설 교수는 “인터넷은 외로움을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며 “그런데도 사람들의 온라인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 고립 악화... 우리 사회에 위험 경고등

 

전문가들은 개인의 고립 심화, 공동체 의식 약화 현상에 우려를 드러냈다. 이러한 현상이 개인에게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일으킬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생산성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재룡 경희대 특임교수(사회학)는 사회적 고립이 정서적인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립이 지속하면 자살로 연결될 수도 있고, 고립으로 인한 우울 상태가 오래되면 ‘묻지마 폭행’ 등 정상적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며 고립이 사회적 위험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송 교수는 “요즘은 개인이 고립될 수 있는 환경 요인이 전보다 더 많아졌기 때문에, 정부 및 지자체가 문제의식을 갖고 지지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심리 상담의 문턱을 낮춰 고립에 빠진 사람들이 손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지원하거나, 혼자되지 않도록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동체 의식 약화가 사회보장제도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건강보험, 공교육 등 사회복지제도가 연대의 상징물이라고 정의했다.

 

김 교수는 “연대 의식이 낮아지면 건강보험료, 공교육 등 공공비용을 부담하는 것에 대해 구성원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국민이 세금을 내기 싫어하고 국방의 의무도 지지 않으려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국가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다. 연대감 저하가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연대감 구축을 위해 국가, 기업, 시민사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국가는 사람들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원활히 형성할 수 있도록 모임 장소를 제공하거나 단체 문화생활을 지원할 수 있고, 기업은 성과 경쟁에 치중하기보다는 공동으로 하는 프로젝트 비중을 늘려 공동체적 기업 문화를 육성해야 한다”며 “또 개인은 다양한 동호회 활동에 참여해 고립을 해소할 수 있다”고 전했다.

 

■ ‘나보다 우리’ 실천하는 청년들

 

지역에는 고립된 청년만 있는 게 아니다. 꾸준히 단체 활동을 이어가며 ‘함께하는 힘’을 믿는 이들이 있다. 지난 2022년 수원에서 결성된 사진 모임 ‘빛 아틀리에’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모임은 대구에서 온 윤희준씨(35)가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만들었다.

 

윤씨는 “처음 이사 왔을 때 속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없어 외로웠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유대감을 느끼고 싶었다”며 모임 결성 이유를 말했다.

 

100여명 멤버 중에는 경상도, 전라도 등 전국 각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멤버들은 서로 사진을 찍고 모델이 돼주며 친밀감을 쌓았다. 유대관계가 생기니 고립에서 벗어나 타지에서 살아갈 힘도 응원도 나눌 수 있었다.

 

윤 모임장은 “공통된 관심사를 사진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외로움도 잊게 된다”며 “앞으로도 ‘함께하는 힘’을 믿고 모임을 계속하고 싶다”고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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