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부분의 법칙과 POGS

윤경원 세종사이버대 한국어학과 교수·한국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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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젊고 어렸던 날에는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뭔가 거창한 계획을 세우곤 했다. 그러나 그건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계획이 아니라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상이나 꿈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마흔이 훌쩍 넘은 뒤에야 알았다. 인간이란 이리도 어리석은 존재로구나 하고 몸소 깨달은 순간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당초 계획이란 것 자체가 지금, 여기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할 때 그 실천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더 큰 계획을 할 수 있고 보다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 아니던가. 어쩌면 불변의 진리였을 그 사실은 실제로 가정에서 훈육하는 부모나 정규 교육과정 중에 스승으로부터 충분히 들었을 법한 것임에도 그때는 들을 귀가 없어 40년 이상을 미련하게 살았나 보다 싶다.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사실은 그것을 하기에 가장 이른 때라는 사실이다. 이는 오랜 시간 미련하게 무모한 계획을 세우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깨닫게 된 삶의 지혜로 보인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 오면서 실제로 우리 삶에는 사실상 늦은 것이란 없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나 계획은 그 필요성을 깨달아 알았을 때에야 비로소 목적성이 구체화되며 실행력을 지니게 된다. 딱히 내 삶에 필요하지 않음에도 그것을 얻기 위해 남들보다 빨리 움직인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시의적절하다고 평가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사람이 무엇인가를 할 때에는 분명 적절한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한 때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은 아니므로 뭔가 하고 싶지만 이미 늦었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때야말로 그것을 시작해야 할 때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들은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그 시작이 고민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바람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뭔가 하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그것을 하려면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 손을 대기도 전에 머리부터 복잡해지는 경험은 누구나 한다. 그런 순간에는 계획하는 것조차 막막하기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버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에 기억할 만한 것이 ‘부분의 법칙’이다. 부분의 법칙이란 행동주의 언어교수법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언어를 가르칠 때 큰 단위를 작은 단위로 쪼개 하나씩 제시하고 연습하면 언어 학습과 습득에 용이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기계적 반복이 강조돼 맥락이 결여된 언어 학습이 이뤄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지만 습관화 혹은 자동화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습과화와 자동화는 언어 사용의 정확성을 발달시키지만 유창성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언어 사용의 정확성과 유창성이 기본적으로 부분의 법칙에 따른 언어 요소의 객관화를 바탕으로 획득되는 것처럼 우리가 바라는 것이나 도모하는 일도 그러한 법칙으로 구체화해 실천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잘게 쪼개 그 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 나름대로 터득한 삶의 기술이 필요한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POGS라는 것을 주로 활용한다. POGS는 목적(Purpose), 목표(Object), 하위 목표(Goal), 세부전략(Standard)의 머릿글자를 따온 것으로 삶의 큰 목적(P) 아래 그것을 이루기 위한 목표(O)를 정하고 그 목표를 내 삶의 영역별(G)로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지(S)를 세부적으로 기술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막연했던 바람이 내 삶의 전 영역에 걸쳐 구체적인 실천 계획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필자는 새해가 되면 늘 POGS를 짜곤 한다. 바라는 것도 없고 그래서 계획하고 싶지도 않다면 그 순간에 자신의 삶의 영역을 잘게 쪼개 계획이 필요한 곳은 없는지 한번 살펴보자. 그러한 작은 실천과 함께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분명 을사년 2025년의 끝에는 어떤 형태로든 좀 더 나은 내가 서 있으리라 확신한다. 부디 이번 을사년은 모두가 마음을 나누며 함께 서로를 돌아보고 뱀같이 지혜로운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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