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경 식생활 연구가
얼마 전 30대 젊은 지인을 만났다. 회사에 대한 고민이 많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부서를 옮기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직속 상사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것이다. 요즘도 술을 권하는 사람이 있냐며 놀랐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어울리는 것을 즐기고 있다.
술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회생활 속에서 술을 완전히 멀리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직장에서의 음주문화는 여전히 뿌리 깊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선택은 어색할 수도 있는 현실이다.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건강한 한 해를 다짐하며 다이어트, 운동, 금연과 함께 금주를 신년 계획으로 세운다. 하지만 의지와 실천은 별개다. 술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2013년부터 1월 한 달 동안 술을 마시지 않는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 캠페인이 시작됐다. ‘건조한 1월’ 정도로 직역할 수 있는 신조어다. 연말 모임으로 과도한 음주를 했던 12월의 후유증을 벗어나 건강하게 새해를 시작하자는 취지다.
이후 ‘Dry January’라는 이름을 상표로 등록하면서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고 참여자들은 한 달 동안 금주를 실천하며 서로를 응원하고 몸과 마음을 새롭게 정비한다.
이 캠페인은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데 매년 800만명 이상이 참여하며 참여자 중 70% 이상이 이후에도 음주를 줄이는 데 성공한다고 한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해서 단기간에 얼마나 큰 건강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연구 결과를 보면 금주의 효과는 예상외로 높다.
한 달간 금주하면 간의 지방 함량이 평균 15~20% 감소하고 체중이 줄며 수면의 질도 10% 이상 개선된다고 한다. 장 건강 회복과 염증 감소, 수면 개선으로 면역력이 향상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평균 16%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알코올 섭취를 줄이면 업무와 일상생활에서 더 높은 집중력을 경험할 수 있으며 우울증 발병률이 약 20% 낮아질 수 있다고 한다. 경제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하루 두 잔씩 마시는 사람이 술을 끊는다면 1년간 약 600만원 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
특히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의 금주는 이후 음주 습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 달의 실천이 절주 또는 장기적인 금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요즘 Z세대와 밀레니얼세대는 음주를 단순히 건강 문제가 아니라 자기관리를 위한 선택으로 본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위한 실천이자 개인의 신념과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이 되고 있다. 이러한 세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음주를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선택이 아니고 술을 권하는 문화가 점점 낯설어지는 세상이 오고 있다. 앞으로 금주하는 청년들이 사회에서 더 높은 위치에 오르면 음주 중심의 직장문화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드라이 재뉴어리 캠페인처럼 특정 시기에 함께 금주를 실천하는 문화가 한국에서도 자리 잡으면 어떨까. 꼭 새해가 아니더라도 한 달간의 금주는 건강과 마음을 새롭게 정비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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