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문학, 생명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
“디어 한강(친애하는 한강 작가).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 따뜻한 축하를 전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강(54)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곳에서 한국인 작가와 아시아 여성의 이름이 불린 건 1901년 시작된 노벨문학상 역사상 처음이다. 한 작가는 이 시대 평화와 사랑의 가치, 문학이 갖는 의의를 전 세계에 전했다.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 그 중 이상적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 뛰어난 기여를 한 이에게 수여되는 노벨문학상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이날 현지 시각 오후 4시부터 시작된 노벨상 시상식은 1시간10분가량 진행됐다. 노벨문학상은 물리학, 화학 등에 이어 네 번째로 시상이 이뤄졌다.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이자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인 소설가 엘렌 맛손은 한강 작가의 작품을 흰색과 빨강, 두 색에 비유했다.
맛손은 “흰색은 화자와 세상 사이에 보호막을 긋고 있지만,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면서 “빨간색은 생명을 의미하지만, 고통, 피, 칼의 깊은 상처를 나타내기도 한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그녀(한강)의 목소리는 유혹적으로 부드러울 수 있지만 형언할 수 없는 잔인함,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맛손은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연약하면서도 강하다며 작품 속에서 과거의 역사를, 질문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설 끝 한 작가의 이름이 호명되자,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일어섰다. 검정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한 작가는 파란 카펫이 깔린 시상식장 한가운데 걸어가, 스웨덴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과 악수를 나눈 후 국왕으로부터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메달에는 노벨상의 상징인 ‘알프레드 노벨’의 얼굴이, 뒷면에는 한강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객석 내 1천500명의 청중은 환호와 존경의 기립 박수를 보냈다.
한 작가는 이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노벨상 연회장에서 국왕 등 1천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분가량의 소감을 밝혔다. 노벨상 만찬은 가장 큰 행사이자 전통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 작가는 어린 시절 풍경을 떠올리며 서두를 열었다. 여덟 살의 어느 날, 폭우가 내리던 그날 어린 한강은 처마 밑의 웅크린 아이들과 군중들이 저마다 자신처럼 비를 보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읽고 쓰는 데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면, 저는 이 경이로운 순간을 반복해서 다시 살아왔습니다. 언어의 실타래를 따라 다른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서 또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그 실타래에 맡겨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한강은 언어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특히 그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자연스럽게 어떤 형태로든 체온을 품고 있다. 문학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임이 분명하다”고 강조하며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작가는 역대 121번째이자 여성으로는 18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노벨상 시상식과 만찬을 마친 한 작가는 11일(현지 시각) 스톡홀름에서 한국 언론과 별도의 회견, 12일에는 스웨덴 왕립극장에서 독자들과 만나며 ‘노벨문학상 여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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