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마지막 달력

image

마지막 달력 한 장이 위태롭게 걸렸다. 마지막은 못다 한 아쉬움에 대한 낙차 큰 상실감을 준다. ‘벌써’라는 시간적 상실감과 결국이라는 수용의 의미가 포함된다. 마지막 잎새, 마지막 수업. 마지막 여행 등 마지막은 저마다 아픈 결말의 마침표를 찍고 있다. 세류동 어린이집을 지날 때 쇼윈도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 해가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비록 예수 탄생의 기쁨을 나누는 행사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겐 한 해를 축복하는 거룩한 의식적 욕망이 있는 것이다. 한 해 동안 고마운 분을 떠올리고 한 해 동안 쌓인 죄와 슬픔과 아쉬움을 위한 성찰의 시간일 수도 있다.

 

며칠 전 11월에 폭설이 내렸다. 창밖의 눈 소리에 수강생들은 들떠 있었다. 당장 카페로 가서 수업하기를 바랐다. 눈은 빨간 단풍나무 가지에 수북이 쌓였다. 11월의 첫눈은 참으로 뜻밖이다. 그 대신 영화 러브스토리의 ‘Snow Frolic’을 켜 놓고 옛 생각을 돌려봤다.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가 눈밭에 벌렁 드러누워 있던 장면, 그녀의 백혈병에 눈물을 흘렸던 추억이 지금은 신파극 같지만 내가 순수한 10대였다는 사실이 그리웠다. 마음 메마른 지금은 잃어버린 여행가방처럼 허탈할 뿐이다.

 

문득 이런 시가 떠 오른다.

 

‘저 파란 하늘의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언저리에/무언가 소중한 물건을/나는 잊어버리고 온 것 같다. 투명한 과거의 정거장에서/유실물계 앞에 섰더니/나는 도리어 슬퍼지고 말았다.’

-다니카와 슌타로 ‘슬픔’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