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시학’ 신인작품상 등단 이명희 시집 출간 자연과 비생명체 간 경계 넘나드는 서정적 여정 '희고 맑은 무늬' 속 생명의 순환과 인간의 의미 되새겨
시간과 자연은 때로 원형으로 돌아가기도, 직선으로 흘러가기도, 점처럼 끊어져 있기도 하다. 지난달 말 출간한 이명희 시인의 시집 ‘희고 맑은 무늬가 된 세계(더푸른출판사刊)’에는 중년이 된 시인의 내면에 사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또 다른 어린 아이 ‘루시’가 등장한다. 그는 “나와 루시는 그린에서라면 못할 게 없다/ 맨땅에다 대고 헤딩을 한다지만 그린은 그린하다는 것만으로 푹신함을 선사했다”(‘루시’)고 말한다.
지난 2020년 ‘열린시학’ 신인작품상을 통해 등단한 이명희 시인은 총 3부, 58편의 시로 이뤄진 이번 작품에서 ‘그린’과 ‘흰빛’, 자연과 비생명체 사이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아냈다. 그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곁’을 지켜주는 존재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고유의 영역을 존중한다.
“색이 과하게 진하거나 연한 연두는 아니죠/ 나는 올리브를 좋아해서 그린이 되었어요…나는 어디에 있나요/ 나는 거기에 없나요…한 떨기 살아있는 그린 속에/ 올리브…나는 떠도는 계절 속에 살아요/ 쓰고 쓰지만 단단한 씨앗을 품고”(‘올리브그린’)
시인은 매일 아침 올리브 나무에 물을 주며 하루하루 모습을 바꿔가는 사계절의 모습을 바라봤다. 초록빛의 자연에서는 단단한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인내의 힘이 전해지기도,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한 방황이 느껴지기도 한다.
“불 속에 넣는다/ 차츰 분명해지는 가닥가닥/ 어쩌면, 처음부터 선명하게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두려움 같은 건 필요 없다/ 아우라가 문득, 단단해진다…눈앞에 하얗게 펼쳐지는 단아함/ 희고 맑은 무늬가 된 세계/ 고여드는 생의 각진 흐름들…” (‘백자를 읽다’)
조선의 백자에 대한 감상은 삶의 순환으로 이어졌다. 이 시인은 “우리는 그림을 그릴 때, 아무것도 없는 흰색 도화지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재가 되어 다 타고 남은 가루 역시 흰빛”이라며 “흰빛은 바탕색이면서도 동시에 최후의 빛깔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효숙 문학평론가는 “이명희 시인은 생명의식을 관념에만 가두지 않고, ‘자연’다운 비인간 생명체들과 호흡을 나누면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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