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가을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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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을이면 단풍을 그렸다. 수원시가족여성회관은 국가등록문화 유산이지만 몇 해 전 담을 걷고 개방했다. 아름다운 석조 건물은 시민들이 쉽게 드나드는 공간이 되었고 손바닥 정원을 거느리게 됐다. 교실에서 낙엽 그리기 구도와 채색법을 설명하고 밖으로 나왔다.

 

흐리고 소슬한 날씨에 올해는 단풍색마저 좋지 않지만, 낙엽에 누워 사진을 찍기도 하고 소풍 같다고 즐거워한다. 햇빛이 좋으면 빛에 반사된 단풍은 화려한 발색을 내는데 그 자체로 아름다운 수채화가 된다. 스케치 후 함께 사진을 찍었다. 기념사진은 인생의 순간을 채집하는 추억의 집합이며 삶을 엮는 진지한 양식이다. 사진에 담긴 얼굴들이 하나둘 사라질지라도 그리움이란 아름다운 형용사는 변할 수 없다. 다음 주엔 가을빛이 밝아 빛의 색을 충만히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을빛에 호박고지와 깍두기 무를 발에 말리던 풍경이 떠오른다. 호박고지찌개와 양념 향 가득한 무청김치가 있는 상차림은 최고의 밥상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생일을 위해 부분 탈곡한 윤기 있는 햅쌀밥에 뽀얀 쌀뜨물로 끓인 미역국을 차려 주신 어머니가 그립다. 정성 가득한 그 밥상은 나의 가슴에 차려진 영원의 성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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