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우리가 원하던 문화 강국

고광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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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며 문화 강국을 꿈꿨다. 이제 김구의 꿈이 이뤄졌다. 한국의 문화는 케이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한강이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K-문학이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이 됐다.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동안 국제 사회에 부정적으로 비쳤던 한국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뛰어난 문학작품이 돼 빛을 발한 것이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이 갖는 의미는 한국의 문화가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순수문화인 문학에서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쾌거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분단 시대를 맞이했고 6·25전쟁을 겪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군사독재를 유지하다가 민주화를 이뤄냈다. 따라서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부정적인 면이 많은 나라다. 권위주의 시대 우리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다. 가수가 음반을 낼 때 건전가요를 넣어야 했다. 작가들도 글을 쓸 때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술과 문학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발전하기 어렵다.

 

한국은 경제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다. 민주화가 되자 예술인과 작가들은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했다. 이 때문에 국제적인 가수가 탄생했고 한류를 주도할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드디어 한국의 문화는 글로벌 시대 세계인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게 됐다. 문화의 힘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긍지와 자부심을 준다.

 

선진국들은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우리를 대표하는 작가가 그동안은 없었다. 이제 한강이 그 길을 열었으니 우리의 K-문학도 세계 중심이 됐다. 문학의 본질을 놓고 보면 노벨 문학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벨 문학상이 갖는 의미는 아주 크다.

 

세계화 시대 국제 시장에서 한국의 제조업 상품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예술과 문화라는 부가가치가 제조업 상품에 얹어져야 한다. 수준 높은 예술과 문화가 없으면 싼 가격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을 하는 분들은 예술과 문학에 종사하는 문화인들로부터 사실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국제 시장에서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때 그 나라의 문화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이유로 예술과 문화는 제조업 상품을 판매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실질적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에서 예술과 문학을 한다는 것은 늘 고통을 동반한다. 국가의 지원은 약하고 기업의 후원은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문화 강국이 되려면 정치인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거나 지원금을 삭감하는 일이 더는 반복되면 안 된다. 필자가 발행인으로 있는 ‘포엠피플’도 재정난이 심각하다. 매번 발간 위기에 놓여 전전긍긍한다. 우리나라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은 소수를 빼고는 작품 활동으로 수익을 내지 못한다. 제2, 제3의 한강이 나오기 위해 문학에 대한 지원 대책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가 예산이 700조원 가까이 되는 나라에서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의 경우 2024년 총예산 지원이 발간지원 6억원, 발표지원 6억원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상황이 이런데도 한강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한강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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