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더위, 짧은 시간 동안 쏟아지는 많은 양의 비로 매년 피해가 늘고 있다. 반지하 침수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폭우에 재산 피해 규모도 점점 늘어난다. 인간 삶을 위협하는 비에 대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 명예교수는 25년째 “기후위기의 해결사는 빗물”이라며 새로운 물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빗물 모아 비상시 사용
극단적인 홍수와 가뭄, 산불과 태풍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 모두 그 답을 알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때문이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선 전 세계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이 과정에서 개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일회용품을 적게 쓰는 것, 환경 보호와 기후변화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실천하고 동참하는 일이다. 한무영 교수는 “빗물 관리를 통해 탄소 저감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그 세월 동안 매년 늘어나는 강수량과 그 피해를 고스란히 인류가 떠안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당장 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얘기하자”고 말한다.
한 교수는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평생 수처리 분야를 연구했다. 수처리 전문가인 한 교수가 빗물에 눈을 뜬 계기는 가뭄이 극심하던 1999년이다.
“그해 봄가뭄이 무척 심했습니다. 심하게 오염된 물도 정화를 거쳐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그러던 중 시원하게 비가 쏟아졌는데 그 물을 전부 흘려보내더군요. ‘산성비’라고 치부하며 ‘빗물=나쁜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는데 오염수도 처리할 기술이 있는데 나쁜 성분을 거르면 화장실 용수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한 교수는 제대로 된 빗물 관리를 주장했다. 빗물은 내리는 즉시 버려야 한다는 사람들의 인식, 제도, 기술에 대항해 각 지역에 떨어지는 빗물을 모으고 땅이 물을 품어 가능한 한 천천히 흐르도록 해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렇게 되면 가뭄일 때 빗물 활용이 가능할 뿐 아니라 홍수에 의한 피해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로 강수량이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논과 밭, 흙과 나무가 많던 과거에 비해 도시화로 인한 지표 형질이 변한 탓도 큽니다. 강수량을 10이라고 했을 때 잔디밭에 떨어지면 3~5 정도 흘러내리지만 콘크리트 땅엔 9가 흐르는 것이죠. 빗물을 잡아주던 땅이 변했으니 흐르는 물의 양이 많아지고 그만큼 범람의 위험도 커지는 것입니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주상복합 건물인 ‘스타시티’가 한 교수의 연구를 수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지역은 과거부터 비가 많이 오면 장화 없이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상습 침수구역이었다. 광진구는 야구장 부지였던 땅을 콘크리트로 덮고 주상복합 건물을 건설하면 침수가 더 심해질 것을 우려했고 한 교수에게 자문했다.
“총 4동짜리 건물 중 한 동만 지하를 한층 더 파 지하 4층까지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 층에 3천t짜리 빗물저장소를 만들었습니다. 보통의 아파트는 비가 내리면 옥상에서부터 하수도로 비가 흐르는데 빗물저장소가 있는 건물은 그 면적만큼의 빗물이 빗물저장소로 모이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모아둔 빗물은 단지 조경 등 공용수도로 활용하고 있는데 가구당 공용수도요금 부담이 크게 줄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단수 등 비상시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빗물은 하늘에서 내리는 공짜 자원
한 교수가 주장하는 빗물 활용 방안은 결국 물 절약과도 관련이 있다. 일례로 서울대 대학원 기숙사 지하에 200t 규모의 빗물 저장시설을 만들어 연간 1천200t의 빗물을 기숙사 화장실 변기 물로 활용했다. 한 교수는 빗물 활용은 ‘재이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빗물은 그 어떤 물보다 출처가 분명한 물입니다. 하늘에서 내린 물이 땅에 떨어져 다른 것과 섞이며 오염되는 것이지 그 어떤 물보다 원산지가 확실하죠. 다른 것과 섞이기 전에 빗물만 모아두면 지하수나 강물에 비해 처리 비용도 낮고, 유통 과정도 투명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반 시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물맛 블라인드 테스트를 50회 이상 진행한 바 있는데 평균적으로 빗물(50~60%), 수돗물(20~25%), 판매되는 생수(20~25%)의 순으로 결과를 얻었습니다.”
한 교수는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이 빗물의 식수화를 논하기 위함은 아니라고 말한다. 단, 어느 것이 더 안전하고 정화 등 에너지 비용이 적게 드는지 비교하고 그만큼 빗물이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비교적 물이 풍족한 우리나라는 이런 결과 값이 와 닿지 않겠지만 물이 부족해 흙탕물을 마시거나 물을 얻기 위해 무거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수십㎞를 이동하는 아프리카나 남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그곳이 비가 적게 오거나 흙탕비가 내리는 지역이 아니거든요. 빗물의 가치가 그곳에서 먼저 인정받는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인식 개선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교수는 최근 집중호우로 의한 인명 피해가 느는 것과 관련해 “강우량의 많고 적음만큼 빗물에 대한 이해와 대처가 중요하다”며 빗물에 대한 개념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얼마 전 전남도교육청에서 교육감 이하 장학사 300여명을 대상으로 빗물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과정에 그 지역에 몬순기후 지역 출신 이주여성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열대우림 기후에서 살다 온 이분들이야말로 빗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분들이죠. 이분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빗물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지역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하자는 데 전남도에서 승낙했고 지역 방송국 등과 협업할 계획입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1인당 하루 평균 물 사용량은 285ℓ로 독일이나 호주에 비해 2~3배 많은 것과 관련해 한 교수는 “물을 적게 쓰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말했다.
“개인이 하루에 몇 ℓ의 물을 쓰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물 부족 국가’라고 말하는 것은 겁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개인의 현재 물 사용량을 알고 그에 맞는 구체적인 물 절약 목표를 세워야 혼란스럽지 않죠.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빗물저금통의 설치비 및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빗물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빗물은 하늘에서 내리는 공짜 자원임을 깨닫는다면 물 때문에 생겨날 분쟁과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