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미래] 행운•불운을 비추는 거울 ‘고양이’

파라오 보호·식량 지키는 신으로 칭송
13세기 반기독교적 사상으로 숙청되기도
고양이와 인간, 존엄 인정하고 공생해야

image
김나연 아태반추동물연구소 연구원•농학 박사

고양이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작지만 다부진 체격, 게으름, 날렵함, 반짝이다가도 게슴츠레한 눈,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일본의 마네키네코, 행운과 불행. 이처럼 다양하고 대조적인 개념이 동시에 떠오르는 대상이 있나 싶다.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함께 지낸 반려동물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사뭇 개와 다르다. 반려견이 인간 생활사에 풍덩 담긴 ‘묵은지’라면 고양이는 잘 익은 ‘김치와 겉절이’다.

 

열 반려견 안 부러운 애교쟁이 ‘실내냥이’에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는 ‘길냥이’까지 사는 모양이 다양하다. 고양이는 1만년 전 농경이 태동한 마을에 쥐를 잡기 위해 먼저 왔고 스스로 길들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적절한 거리 두기로 야생성을 간직하고 있다. 나를 잃지 않고 남에게 물든 이 현명함이 고양이가 지닌 정체성이 아닐까 한다.

 

나 자신을 지키는 힘은 세상을 사는 원동력이다. 또 남을 돕는 유용한 그릇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그릇은 거울과도 같아 나와 남을 동시에 비춘다. 고양이의 조상, ‘아프리카 들고양이(Felis lybica)’는 인류와 함께하면서 ‘집고양이(Felis catus)’가 됐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쥐로부터 식량 창고를 지켜낸 공을 높이 인정받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고양이는 파라오를 보호하고 서민의 식량을 지키는 신으로 칭송됐고 행운, 정의, 다산의 상징이 돼 수많은 미라, 조각상, 벽화로 재탄생했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가 가져온 이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해했다.

 

세월이 흘러 유럽까지 퍼진 고양이들은 농업 사회에 큰 도움을 주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13세기부터 균열이 생겼다. 중세 유럽에서는 과학을 반기독교적 사상으로 믿고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을 마녀로 몰았다. 무지가 낳은 미신은 고양이를 악마로 규정했고 오랜 기간 마녀사냥과 동시에 고양이 숙청이 자행됐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쥐벼룩에 기생하는 세균으로부터 발생한 흑사병은 14세기부터 발생해 10년 동안 최소 3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8세기까지 창궐했다. 원인은 여전히 논란 중이나 당대에 만연했던 사회 풍조에 대해 한 번쯤 인과관계를 생각해 볼 일이다. 중세 유럽인들은 고양이의 유입을 비뚤어진 사회적 시각으로 해석했고 되돌아온 부메랑은 처참했다. 고양이는 먼저 인간에게 다가왔고 공생(共生)했다. 서로에게 식량을 줬고 터전을 나누며 존엄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인간의 관점이 왜곡되고 정신이 황폐해질 때, 고양이는 악행의 피해자가 돼 인간이 지닌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고양이를 아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이 심해질수록 파괴된 자아상은 학대로 대변됐다.

 

이런 모습은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기사를 검색하면 동물 학대의 동네북은 늘 고양이다. 가끔 생각한다. “고양이야 도망가”라고. 왜 이렇게 당하면서 사람 곁에 있는지 묻고 싶기도 하다. 그럴 때 이 작은 생명체는 느긋한 눈빛으로 이런 대답을 하는 것만 같다. 고마우니까 곁에 남는 거라고. 그래서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까지 거울이 돼 비춰 주고 싶다고.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